글. 최원형
생태환경 작가이면서 자연탐구가. 지은 책은 《사계절 기억책》, 《착한 소비는 없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외 다수
고라니를 만나본 적 있나요? 고라니는 순우리말이고 중국에서는 어금니노루라는 의미에서 아장(牙獐)이라고 부르며 영어권 국가에서는 물사슴(Water deer)이라 합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만 서식하는 토착종인 고라니에 영어 이름이 있는 건 중국 양쯔강 강변에서 노닐고 있는 고라니를 처음 발견한 외국인이 이름 붙였기 때문이라고 해요. 현재 고라니는 한국과 중국 외에 영국과 프랑스에 일부 살고 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전시와 사육을 목적으로 중국고라니를 프랑스와 영국으로 이주시켰거든요. 중국고라니는 한국고라니와는 다르니까 한국고라니는 오직 우리나라에만 살고 있어요.
고라니는 물을 좋아하고 헤엄도 잘 쳐요. 2011년에 속초에서 약 300m 떨어진 무인도인 조도에 고라니 한 마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구조하게 됐어요. 구조 과정에 고라니가 바다로 헤엄쳐 도망을 갔고 이후에 전문가들이 다시 장비를 갖춰 결국 무사히 포획해 육지로 옮겨줬어요. 물사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라니가 수영을 잘할 수 있다는 걸 구조하던 그 누구도 상상 못 했던 것 같아요.
한강 하구에 있는 장항습지처럼 고립된 습지에도 고라니가 강을 건너는 걸 보았다는 사람들이 가끔 있고요. 수영을 잘 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일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되기도 해요. 어망에 걸려 죽은 고라니가 발견되기도 하니까요. 고라니는 물이 있는 지역을 선호하지만 습지가 아닌 환경에서도 잘 살아간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슴류의 공통 조상은 아프리카에 살다가 인도를 거쳐 중국에서 한반도로 넘어왔대요. 한반도와 중국 일부 지역에서 진화 과정을 거쳐 고라니가 생겨났을 것으로 보고 있고요. 신생대에 전반적으로 포유류가 번성해서 전 지구로 퍼져나갔는데 빙하기가 닥치면서 많은 종이 위험에 처합니다. 신생대 홍적세에 있었던 빙하기의 영향이 아시아는 상대적으로 덜 심했다고 해요. 그 당시 한반도와 중국 남부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해서 많은 동물의 피난처가 됐어요. 빙하기에 서해는 육지였기에 중국과 한반도는 연결되어 있었지요. 현재 두 지역에 서식하는 고라니는 중국 동부 지역에 분포하는 중국고라니와 한반도 전역에 사는 한국고라니 이렇게 두 개의 아종입니다.
분포지역이 제한돼있는 데다 중국고라니는 개체 수가 한국고라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이지요. 중국에는 일부 제한된 지역에 고라니 1만여 마리가 살고 있는데 보호를 받고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제주도와 울릉도 등 몇 개 섬을 제외한 전 지역에 고라니가 살고 있지만 개체 수 파악조차 쉽지 않아요. 평지, 산악, 도시 지역을 대상으로 고라니 밀도 연구를 진행했는데 2011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고라니의 서식밀도는 1k㎡당 7.3마리로, 과거 1982년 고라니 서식밀도인 1k㎡당 1.8마리에 비해 개체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농작물에 피해를 주자 급기야 유해 조수로 취급받기에 이르렀어요. 도대체 왜 고라니 수가 늘까요?
고라니의 천적인 중, 대형 포식 동물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라니가 선호하는 습지와 하천 주변 서식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데다 로드킬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고라니 개체군이 안정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어요. 또 지구 기온 상승으로 고라니의 먹이가 되는 식물이 고위도로 이동을 하니 고라니도 향후에는 위도가 높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 텐데 DMZ로 가로막힌 한반도에서 이동이 가능할까요? 고라니는 가뜩이나 유전적 다양성도 낮은 편인데 당장 피해가 발생한다고 유해 조수로 낙인찍어 합법적으로 사냥하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전동킥보드를 킥라니라 부르기도 하는데, 갑자기 튀어나와 운전자를 놀라게 하는 게 고라니와 닮았다고 붙여진 별칭입니다.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서 로드킬로 사망하는 1위 동물이에요. 한국도로공사와 국립생태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 년 중 야생동물의 활동량이 증가하는 5~6월에 로드킬이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 2019년 기준으로 일반 국도에서 발생한 총 1만 7,502건 로드킬 가운데 30%가 5월과 6월에 일어났으니까요.
고라니 새끼는 태어난 지 1년이 되면 독립을 하는데 그게 대략 5~6월쯤이라고 해요. 또 이맘때는 텃밭에 파종한 씨앗이 고라니가 좋아할 정도로 자랐을 시기이고요. 고라니는 산과 평지가 인접해있는 곳을 좋아해서 새끼들과 함께 먹이활동을 하며 이동하기도 하고 새끼들이 독립을 하느라 활동이 활발해지다가 로드킬을 많이 당합니다. 운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튀어나온 게 맞아요. 그런데 고라니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고라니의 고라니의 고라니…에게 이곳은 빙하기 이래로 살던 터전입니다. 살던 곳이 어느 날 잘리면서 도로가 생겨요. 먹이를 찾아 이동하다가 들어선 곳에서 달리던 차와 그대로 충돌해버린 거예요.
도로 건설이 불가피하다면 생태통로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태통로로 동물들을 유인할 수 있도록 유도 울타리가 함께 설치되어야 합니다. 고라니가 뛰어넘지 못할 높이로 울타리만 쳐도 안타까운 생명을 살릴 수 있어요. 갑자기 뛰어든 고라니로 인해 아찔한 운전자의 안전도 함께 지킬 수 있고요. 우리가 만든 밭으로 들어와 농사를 망치니 유해 조수이고 우리가 건설한 도로로 뛰어드니 이 또한 유해 조수다?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생각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