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은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가 오롯이 깃든 전통음악이다. 국악 중에서도 정가(正歌)는 조선시대 선비나 사대부가 시조에 가락을 붙여 풍류를 즐기고 인격 수양을 위해 부른 노래다. 가객(歌客) 김나리 씨는 공연과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정가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선대의 문화를 잘 지키는 일을 넘어 ‘어제와 오늘’을 엮고 마침내 옛 선조와 후손이 교감하는 과정. 우리네 문화유산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김나리 씨의 목소리가 더없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글. 김주희 사진. 이승헌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악 중 정가를 전공한 가객으로 정가를 널리 알리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통문화인 정가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요. 현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음색과 시김새를 입힌 국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팀으로 활동 중인 ‘정가앙상블 소울지기’의 대표이자 창작 작업, 교육 등을 합니다.
정가를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정가의 특징과 매력은 무엇인가요?
시조를 읊는 정가는 우아하고 도도하면서 느린 노래입니다. 노랫말을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 부르는 것이 특징이죠. 45글자를 부르는 데 10분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버들은’ 세 글자를 1분 동안 부르기도 하죠. 판소리나 민요와 달리 절제의 미학이 담긴 매우 서정적인 노래입니다.
(좌)가야금, (우)비파
정가를 처음 배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 중학생 시절 어머니의 추천으로 정가를 처음 접했습니다. 당시 인간문화재인 김월하 선생님을 통해 악보 없이 구전심수로 정가를 배웠어요. 선생님을 뵌 첫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어두운 방에서 조용히 노래를 부르셨는데, 낯설고 생소한 모습인데도 배우고 싶다는 열정이 생기더라고요. 매일 혼자서 지하철 타고 다니며 정가를 조금씩 익혀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감정을 절제하는 방식이 차분한 제 성격과 잘 맞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정가앙상블 소울지기 음반 발매 및 공연, 영화 <해어화> OST 작업 등으로 정가의 현대적 여정을 이어왔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국악인으로서 나만의 정점을 찍고 싶은 생각에 평소 꿈꾸던 공연을 추진한 결과, 올해 2월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손수 대관하고 무대를 구상하며 준비한 공연인데요. 제자이자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가객들도 흔쾌히 동참해 줬습니다. 이국땅에 정가를 알리고자 하는 의지에 공감한 많은 분이 함께해 주셨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공들여 열심히 준비한 공연은 거의 만석이었는데요.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관객들이 관람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걸 실감한 공연이었어요.
창작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무엇인가요?
정가앙상블 소울지기의 ‘인생은 흘러가는 봄’이라는 곡입니다. 직접 가사를 쓴 곡인데, 어느 날 연습실 창밖을 보다 영감이 떠올랐어요. 매년 봄에 꽃을 피우는 살구나무를 보면서 문득 흘러가는 시간을 곱씹게 되더라고요. 변해가는 제 모습이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내 인생의 중심이 나라는 건 변하지 않죠. 인생의 자연스러운 순리를 받아들이면 행복해진다는 메시지를 담고자 했어요.
최근 국악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를 엮는 작업도 볼 수 있고요. 국악의 현대화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국악을 생소하게 느끼는 분들이 있는데, 막상 전통 음악을 들으면 한국인들은 단번에 ‘아 우리의 것이구나’라는 느낌이 든다고 해요. 그만큼 국악은 한국인의 정서와 감성을 잘 표현한 음악입니다. 누구나 일상에서 국악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많은 국악인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대 연출이나 작곡, 장르 접목, 접근성 제고 등 이미 새로운 시도를 다양하게 해 왔죠. 국악의 본질을 잊지 않되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으니 대중들도 국악을 단순히 ‘옛 음악’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전통음악의 매력에 빠져 국악에 입문하려는 이들을 위해 도움을 준다면요?
국악도 장르가 다양한데요. 전통음악이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국악을 기반으로 한 창작음악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신나는 음악을 좋아한다면 민요나 사물놀이, 연희 음악을 추천합니다(악단광칠, 이날치밴드, 씽씽밴드). 서사가 있는 공연을 즐기고 싶은 분들은 판소리나 창극(국립창극단 ‘리어’ 등), 국악기의 소리가 궁금하거나 연주자의 기량을 극대화한 공연을 보고 싶다면 산조를 들으면 좋고요. 오케스트라 같은 웅장한 연주가 취향이라면 국악 관현악 연주를 접해보세요. 조용하고 서정적인 음악을 즐기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정가(정가앙상블 소울지기)나 조선시대 풍류음악(정가악회) 또는 궁중음악을 추천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요?
공연 아이디어가 많이 있는데, 젊은 국악인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참신한 무대를 선보이고 싶어요. 앞으로 정가 공연 기획자로서 폭넓은 활동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한국서부발전과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서부공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덧붙여주세요.
네, 퇴직하신 김현철 환경운영팀장님이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마치 팬클럽 회장처럼 응원과 홍보를 많이 해 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되고 있어요. 국악인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신 덕분에 지금도 노래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많은 국악인이 현대인과 공감하기 위해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고 있으니 따뜻한 시선으로 국악에 관심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저 또한 제 자리에서 국악을 알리는 활동을 해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