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다
새로운 길은 다름 아닌
내 안에 있어요

2016년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해 ‘꼬마 화가’로 이름을 알린 전이수 작가가 어느새 열다섯 살의 싱그러운 청소년이 되었다.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과 남다른 감수성으로 여덟 살에 첫 동화책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13권의 책을 출간한 전이수 작가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제주시에 갤러리 ‘걸어가는 늑대들’을 개관해 꾸준히 작품 활동과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6년째 이어진 홈스쿨링은 사랑과 존중이 가득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살아있는 삶을 탐구하는 배움터로 확장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오늘도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중이다.



Q. ‘영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지만 이수 작가는 그림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솜씨가 빼어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특출난 면이 있어요.
A. 특출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뿐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그저 주변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는 탓에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요.

Q. 홈스쿨링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정해진 일과와 규칙을 따르면 되는 학교와 달리 홈스쿨링은 그 모든 걸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잖아요.
A. 규칙이 많을수록 거기에 갇힌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집은 규칙이 별로 없어요. 딱 두 가지만 잘 지키면 되는데요. 우선 밥 먹을 때 먼저 일어나지 않기.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며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예요. 그리고 밥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가지고 남김없이 먹기. 그 외에는 자유로워요.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홈스쿨링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고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어서 홈스쿨링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Q. 이수 작가의 하루가 궁금해요.
A.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가족들과 함께 아침을 열어요. 오늘 하루 동안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계획을 세우는데요.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시간이기도 해요.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계획에 따라 하루를 보내요. 심심할 틈 없이 바쁘지만 하루하루가 무척 소중해요.

사람들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해서 죽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난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난 멋지게 늙을 것이다> 중에서

Q. 초등학교 3학년 때 홈스쿨링을 요청했다고요. 시간을 원하는 대로 사용하고 배우고 싶은 걸 마음껏 배우기 위해서요.
A. 요즘에는 살아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제가 사는 곳 주변의 삼촌과 이모들을 찾아가는 수업을 해요. 그분들이 살아온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데요. 그러다 보면 느끼는 점이 참 많아요. 교과서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이야기들이라 그 어떤 수업보다 귀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에요.

Q. 또래 친구들은 중학교에서 슬슬 입시 준비를 할 시기인데 남다른 길, 나만의 길을 개척해간다는 게 문득 불안하거나 두려울 때는 없나요?
A. 불안을 안고 살면 불안한 곳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엄마가 가끔 불안해하실 때가 있어서 제가 되레 엄마를 안심시켜드려요.

Q.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홈스쿨링을 선택한 이유도 있다고요.
A. 가족을 통해 살아가는 방식을 배울 수 있어요. 동생들과 놀면서 밝고 따뜻한 말이 그 어떤 어둡고 화난 말도 이긴다는 걸 배웠어요. 또 하루는 산책길에 둘째 동생 유정이가 차를 제대로 피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어른과 마주친 적이 있어요. 그때 첫째 동생 우태가 유정이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강함에 있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바르게 쓸 때 나온다는 걸 배웠어요. 이처럼 가족을 통해 배운 삶의 방식을 몸과 마음에 담고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 글과 그림에 가족과 보낸 일상이 자주 등장해요. 가족에게 받는 사랑은 살면서 제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Q. 이수 작가의 글에는 사랑과 행복도 자주 등장해요.
A. 웃고 행복해하는 사람보다 화내고 짜증 내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행복은 너무나 간단한데 어려워 보이거든요. 사실 ‘무엇이 행복이다’가 아니라, 내 기분이 좋으면 그게 행복이에요. 그리고 그 기분은 내 생각에 따라 바뀌기도 해요. <내 마음속 나무>라는 글에 이렇게 썼어요. ‘가끔 누군가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때면 그건 행복하지 않다고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어쩌면 내 마음대로 안 되니까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원래 당연한 것처럼 여겨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건 안 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그 반대로 생각한다. 안 되는 일은 잠시 내버려두고 되는 일은 된다고 행복해하는 거다.’

Q. 이수네 집은 감정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온 가족이 편히 반말을 쓰고, 가족회의를 통해 구성원 모두가 동등하게 가족 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을 갖는다지요. 어른에게는 존댓말을 쓰고, 자녀들은 부모의 의견을 따르는 존재라는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난 모습이 혁신 그 자체예요.
A. 처음부터 엄마가 말끝에 꼭 ‘요’ 자를 붙이고 90도로 배꼽인사를 해야만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라고 가르쳤다면 제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지금처럼 존중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마음 깊이 우러나는 존중심을 갖는 게 누군가 시켜서 하거나 안 하면 혼나고, 그래서 눈치를 보면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그건 진짜 내가 아니니까요. 만들어진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 하루하루를 피곤하게 보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제 감정을 편하게 표현할 수 있었어요. 누군가 제가 반말을 쓴다는 이유로 버릇없다고 해도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엄마가 있었고요. 엄마는 항상 저를 믿고 존중해주세요. 그래서 제가 웃음이 많고 자유롭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Q. 소아암 환우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하려고 장발을 유지하고 있다고요. 그 밖에도 미얀마 난민학교, 아프리카 친구들, 제주 미혼모 센터 등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어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이수 작가가 그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면 나 자신을 더 성숙하고 좋은 사람으로 가꿔나가야 해요.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배워야 하고요. 그게 내가 사는 이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일이자 큰 기쁨이라고 믿어요. 저는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면 좋겠어요.

Q.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갈 때는 큰 용기가 필요하죠.
A.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필요한 용기는 나를 변화시켜나가는 용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살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용기이기도 하고요.

Q. 앞으로 이수 작가가 만들어갈 새로운 길이 어떨지 기대돼요. 살짝 귀띔해줄 수 있나요?
A. 저는 꿈이 많은데요. 그중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은 정말 정말 좋은 아빠가 되는 거예요. 자녀들에게 큰 울타리가 되어주고 힘과 믿음을 주는 사람. 더 넓게 보면 ‘전이수’라는 한 사람이 큰사람이 되어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힘과 믿음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저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죠? 좋은 습관이 몸에 배어 지금보다 더 컸을 땐 제가 어떤 행동을 해도 주위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만큼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도 있어요.

전이수
환경문제를 다룬 첫 번째 그림책 <꼬마악어 타코>를 시작으로 <걸어가는 늑대들>, <새로운 가족> 등 다수의 그림책과 에세이로 어른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는 ‘제주 소년’. 섬세한 감수성과 남다른 시선이 돋보이는 개인전과 기획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