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다
신뢰할 만한 공동체에서
행복이 피어납니다
행복이 피어납니다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교수 인터뷰
사춘기 자녀와 부모 사이에서 어긋난 마음을 연결하고 대화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한 이가 있다. 일명 ‘사춘기 통역사’라는 별명을 지닌 김현수 교수다.
사춘기는 아이가 부모를 떠나 자신만의 삶의 여정을 시작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신뢰. 그것은 곧 이 사회가 안전하고 믿을 만한 곳이라는 믿음과도 이어진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삶에 지지와 신뢰를 보내는 김현수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춘기는 아이가 부모를 떠나 자신만의 삶의 여정을 시작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신뢰. 그것은 곧 이 사회가 안전하고 믿을 만한 곳이라는 믿음과도 이어진다. 사춘기 청소년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삶에 지지와 신뢰를 보내는 김현수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Q, 최근 건강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내셨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9월 <사춘기 마음을 통역해 드립니다>와 <괴물 부모의 탄생> 두 권의 책을 연달아 출간하셨어요.
A. 덜컥 암에 걸리고 나자 여러 가지 걱정 중에서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죽으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이 컸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마치고 약속한 일부터 해내자는 다짐으로 두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사춘기 마음을 통역해 드립니다>(미류책방)는 약속한 책이었고, <괴물 부모의 탄생>(우리학교)은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로 올해 상반기에 세미나도 했어요.
최근 이슈가 된 여러 사건과 맞물리면서 학교 현장과 부모님들 모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Q, 소년 교도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면서 배움과 치유의 중요성을 깨닫고 2002년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을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계십니다.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보내고 있는 교수님께선 어떤 청소년기를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A. 인생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성장기의 핵심 상처가 성인기 삶의 주제가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딱 그랬어요.
부모님의 사업이 망하면서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며 사춘기를 겪었고 해체된 가정에서 어렵게 살아야 했거든요. 정신과 전문의가 된 후로도 사춘기 시절의 개인적인 문제들이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자각하고 그 방면으로 더 공부하게 됐고요.
결국 쉽지 않았던 청소년기가 지금의 삶을 사는 동기가 된 셈입니다.
Q, 진료실에서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외롭다’라고 하던데요. 어떻게 보면 외로움은 인간으로서 겪는 필연적인 감정일 텐데 요즘 아이들이 외로움에 유독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요즘 청소년들은 소속감을 느낄 집단이나 보살핌을 받을 어른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면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긴 했지만 돌봄을 받을 데가 많았어요.
고모님, 이모님을 비롯해 어머니 친구분들, 또 교회에서 만나는 어른들과 목사님이 보살펴주고 지원해주셨지요. 그렇게 만난 확대 가족이 복지기관 이상의 역할을 했고 가정을 조금이나마 대체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양가를 통틀어 외동이거나 아들과 딸 한 명씩만 둔 ‘두 외동’인 경우가 많고 일차적 관계에 기초한 돌봄, 즉 관심과 사랑으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부족해졌어요.
고모, 이모나 가까운 사촌이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이런 확대 가족조차 편하지 않지요. 정작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원에서는 관계라는 측면에서 케어해주지 않으니 결국 스마트폰이 최고의 친구가 될 수밖에요.
저는 사춘기 아이들의 방황 또는 반항의 원인도 외로움이란 측면에서 봅니다.
Q, 사춘기 때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등도 심해집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족 간의 신뢰에 금이 가기도 하는 때가 바로 사춘기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A. 평생을 살면서 부모를 제일 미워하는 시절이 보통 사춘기 때라고 하지요. 아이들은 혼자인 걸 외로워하면서도 부모와 공생하거나 의존하는 상태를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절실하게 느낍니다.
게다가 요즘은 공부와 경쟁, 학벌이 최우선인 세상이다 보니 성적에 따라 사랑을 더 주고 덜 주는 각박한 분위기가 형성돼버렸어요. 가족은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무슨 공장인 양 해야 할 일로 가득 차고, 무언가를 생산해내야 하는 식이 된 것이죠.
부모는 사장이 아닙니다. 아이들도 성적을 생산하는 직원이 아니고요. 사실 가족 간의 신뢰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신뢰에 금이 갔다 해도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 나누고 부대끼면 금방 회복돼요.
여러 여건상 가족이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다는 게 문제겠지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은 당연히 부모가 먼저 변화를 시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부모는 어른이고 자녀는 도움을 받고 성장해야 할 존재니까요.

Q, 최근 교권을 위협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부모들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을 ‘괴물 부모’라 일컫는다고요. 어떤 면에서는 부모가 학교와 교사를 믿지 못한 결과, 즉 신뢰가 사라진 사회를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A. ‘괴물 부모’는 주로 자녀에게 매우 권위적이면서 동시에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부모를 일컫습니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일본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어요. 일본에서도 ‘저출생’, ‘초경쟁’, ‘가부장적 양육’, ‘각자도생’이라는 요소들이 뒤범벅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봅니다.
‘저출생’은 하나밖에 없는 아이라는 요소, ‘초경쟁’은 그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성공하기 힘든 사회적 여건을 의미합니다. 양육에 대한 책임이 엄마에게 집중되는 ‘가부장적 양육’과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는 사회적 불신이 괴물 부모를 만든다고 봐요.
포모 증후군이란 게 있습니다. 한마디로 ‘나만 빠진 거 아냐?’, ‘나만 없는 거 아냐?’ 하는 심리에 시달리는 현상인데요. 괴물 부모가 갖고 있는 가장 흔한 불안 심리 중 하나예요. 안전한 집단 소속감이 보장되지 않고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클 때 더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자기 자녀가 소외, 고립, 배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거나 그런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면 이 증후군이 ‘풀가동’ 되어서 온갖 방어 전략을 동원하도록 만들지요.
포모 증후군이란 게 있습니다. 한마디로 ‘나만 빠진 거 아냐?’, ‘나만 없는 거 아냐?’ 하는 심리에 시달리는 현상인데요. 괴물 부모가 갖고 있는 가장 흔한 불안 심리 중 하나예요. 안전한 집단 소속감이 보장되지 않고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클 때 더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자기 자녀가 소외, 고립, 배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거나 그런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하면 이 증후군이 ‘풀가동’ 되어서 온갖 방어 전략을 동원하도록 만들지요.
Q, ‘괴물 부모’는 단순히 한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A. 괴물 부모 밑에서 과잉 통제를 받은 아이들은 처음에는 순종하지만, 점차 부모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성장하고, 어떤 아이들은 부모를 미워하면서 성장하지요.
순종과 의존 속에서 부모 없이는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는 상태에 처하거나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반사회적인 속성이나 자기애적 속성의 일부를 흉내 낼 수도 있어요.
이렇듯 부모의 과잉 통제와 부모에 대한 과잉 의존 사이에서 무기력감과 불안감을 느끼면서 아이들의 마음에 균열이 생깁니다. 괴물 부모가 미친 지대한 사회적 악영향은 ‘아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냈다는 점입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말해요. 부모님처럼 살 거면 결혼은 안 하는 게 낫고, 내가 자라온 것처럼 자녀를 키워야 한다면 낳지 않는 게 낫다고요.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청소년기의 좋지 않은 경험은 결국 어른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고, 어른이 되고 싶지 않거나 잘못된 어른이 되게 만들죠.
“한 사회가 생존하려면 개인과 집단이 함께 성장해야 하고 자율과 연대가 동시에 존중되어야 해요. 행복하고 신뢰할 만한 공동체가 선행되어야 건강한 개인주의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Q, 가정이든 학교든 안전한 집단 소속감이 보장되어야 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A. 우리 사회에는 ‘나만 잘하면 된다’, ‘나만 잘돼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합니다. 그러나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공동체가 마련되어야 해요. 관계에 기반을 두지 않은 자기만족만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에요.
흔히 민주주의를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사회가 생존하려면 개인과 집단이 함께 성장해야 하고, 자율과 연대가 동시에 존중되어야 해요.
행복하고 신뢰할 만한 공동체가 선행되어야 건강한 개인주의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Q,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신뢰를 쌓으려면 개인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볼 수 있을까요?
A. 존중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만 해도 대화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는지 존중하지 않는지 단박에 알아차립니다. 아이를 존중하는 부모, 아이를 존중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이 그 시작이겠죠.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하다고 느끼고 그런 경험이 쌓이면 신뢰는 자연적으로 생긴다고 봅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교수이자 치유형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의 설립자 겸 교장. “환자는 물론이고 환자의 환경까지 관심을 갖고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청소년들의 다양한 고통과 어려움을 상담하고 치유해 왔다. 진료와 교육 외에도 강의와 집필 등 ‘일인다역’을 소화하며 청소년들의 삶을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힘쓰고 있다.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교수이자 치유형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의 설립자 겸 교장. “환자는 물론이고 환자의 환경까지 관심을 갖고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청소년들의 다양한 고통과 어려움을 상담하고 치유해 왔다. 진료와 교육 외에도 강의와 집필 등 ‘일인다역’을 소화하며 청소년들의 삶을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