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OUTSIDECURATION

다르다는 것 그래서
완전하다는 것

각각의 삶을 사는 이들이 모여 이룬 세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각자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글 민용준
(영화 저널리스트&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첫 겨울 월드컵이자 대한민국의 16강 진출과 메시의 아르헨티나 우승으로 여러모로 인상적인 기억을 남긴 제22회 카타르월드컵에서 조별리그 첫 경기에 나선 이란 대표팀 선수들은 국가를 제창하지 않았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끌려가 의문사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 사건으로 촉발된 자국민들의 반정부 시위에 연대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역설적이지만 공존은 이런 것이다. 여전히 정부에 반대하는 태도만 드러내도 목숨이 위태로운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도,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자유롭게 허용되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도 4년에 한 번씩 한 나라에 모여 축구를 한다. 살아가는 환경과 누리는 문화와 신앙하는 종교와 피부색은 다르지만, 축구는 동일하다. 네모난 그라운드에서 둥근 공 하나를 상대의 골 안으로 밀어 넣기 위해 기량을 펼치고 자웅을 가린다.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축구를 통해 하나의 규칙을 공유한다. 그렇게 다양한 세계가 동일한 행위와 목적으로 잠시 뒤엉킨다. 서로의 차이는 상관없다. 그저 축구를 할 뿐이다. 덕분에 우리는 평소 접할 수 없던 세계와 조금이나마 가까워진다. 그렇게 서로의 차이를 부정하지 않고 한데 모여 하나의 놀이를 즐기다가 때가 되면 흩어진다.
물론 세계인들이 함께 모여 공을 찬다고 해서 전 세계가 마냥 평화로운 건 아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전쟁터다. 심지어 러시아의 공습으로 전력 공급 시설이 파괴된 탓에 한겨울에 전력이 끊겨 난방할 수 없어서 추위로 신음하는 이들이 1,000만 명은 족히 된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이상 기후 현상으로 미국과 일본에서는 혹한과 폭설이 덮쳐 적지 않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관련 사고가 속출했다. 이런 극단적인 날씨는 인류가 배출한 온실 가스로 인해 일어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짐작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양상과 막을 길이 요원해 보이는 기후 위기 상황의 공통점은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인류의 가장 큰 적은 어쩌면 인간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간을 인간으로서 살게 만드는 것 역시 인간 자신일 것이다.



민용준이 추천하는 공존에 관한 영화



인간과 자연의 공존, <아바타: 물의 길>

지난 2009년에 개봉해 전 세계 박스오피스 최고 흥행 성적을 거둔 <아바타>는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 문제에 직면한 인류를 향해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다.
<아바타>가 숲과 인간의 관계를 조명하며 자연과의 공존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라면 최근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은 바다와 인간의 관계를 조명하며 또 한 번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제시하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상의 세계이지만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의 폭력성과 무심함에 경종을 울리는 시각적 체험은 생생함을 넘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와의 관계를 각성시키는 권유에 가깝다. 동시대에 가능한 시각적 체험의 경지를 한 차원 높이겠다는 야심은 결국 인류가 지금 마땅히 지키고 보존해야 할 자신들의 터전에 대한 생생한 감각을 요구하는 기술이나 다름없다.



신구 세대의 공존, <그랜 토리노>

50년 전 한국전에 참전했던 월트(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는 뼛속까지 보수적인 미국인 백인이다. 예의가 없는 젊은 세대들은 더는 자신이 긍지를 갖고 있던 것들을 예우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회의감만 가득하던 월트는 평소 자신이 경멸했던 동양인 이웃들과 뜻밖의 인연을 맺은 뒤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랜 토리노>는 그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그랜 토리노’는 월트가 젊은 시절을 보낸 포드사의 1972년형 머슬카다. 그에게는 훌륭한 유산이지만 자식들은 탐탁지 않아 한다. 그런 와중에 이웃의 동양인 소년을 통해 이방인들이 자신이 아끼는 것을 물려줄 건강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나아가야 할 길을 열어주기로, 그것이 노쇠한 육체로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유산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노장이 열어낸 길로 청년은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