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을 오르며 고즈넉함을 만끽했다. 자연에 깃든 고요가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금리단길을 걸을 땐 소소한 즐거움에 사뭇 설레었다. 책과 함께 마음마저 낙낙해지는 여유를 누렸던 구미 탐방기.
경상북도 구미는 옛것과 나중 것이 공존하는 도시다. 가야시대 고분군과 유적이 여전히 발굴되며, 조선시대 통치 이념인 성리학의 발원지이기도 해 역사 문화 탐방을 원하는 이에게 넘치도록 풍성한 볼거리를 펼쳐 놓는다.
구미는 1970년대에 조성된 국가산업단지 덕분에 신구조화를 이룬 외양을 갖게 되었다. 옛것은 오래 보존되도록 보살피면서 나중 것을 너른 마음으로 받아들여 다채롭게 변화했다. 구미는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사람과 공간을 품어 안으며 다양한 색이 공존하는 도시로 변모 중이다.
금오산은 2002년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 중 하나로, 다양한 문화재를 품고 있어 구미 여행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다. KTX를 타고 김천구미역에 내려 금오산을 찾으려면 차로 족히 30분은 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미의 진정한 멋을 살피려면 금오산으로 향할 것을 추천한다. 대한민국 도립공원 1호인 금오산도립공원을 목적지로 선택해 이동하면 가장 빠르고 편리하게 매표소를 찾을 수 있다.
해발 976m, 비교적 높지는 않으나 금오산은 등반하기 어렵다는 돌산에 속한다. 4개 코스 중 선택해 산을 오를 수 있는데 난도 때문에 머뭇거리게 된다면 15분마다 운행하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좋다. 6분 30초 만에 산 중턱에 닿을 수 있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행하며 오르는 동안 2km 길이의 금오산성을 관망할 수 있다.
▲ 해운사까지 닿는 케이블카. 금오산성을 관망하며 고즈넉함을 누릴 수 있다
▲ 금오산 정상 풍경. 저 멀리 약사암이 보인다
눈 쌓인 금오산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데 이날은 소복하게 눈이 쌓여 고즈넉함이 배가되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곧 해운사 입구가 나타났다. 눈 쌓인 길 곳곳에 놓인 돌탑에 잠시 머물러 돌을 쌓아 올린 이들의 염원에 마음을 보탰다. 구름도 쉬어가는 사찰이라는 뜻을 지닌 해운사는 임진왜란으로 폐사됐다가 1925년 복원됐다.
사락사락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스님의 비질 소리가 그 어떤 음악보다 포근하게 마음을 다독였다. 대웅전 오른편에 조성된 약사여래불 앞에서 오래 머물던 이는 분명 소중한 이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중생의 병을 치료한다는 약사여래불 한쪽,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놓고 간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다. 고개를 들면 뒤쪽에 높이 28m의 대혜폭포가 위용을 떨치고 있다. 떨어지는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해 명금폭포라고도 불린다.
▲ 눈 쌓인 해운사, 스님의 비질 소리가 정겹다
▲ 해운사 곳곳의 금빛 장식들이 '황금빛 까마귀'라는 산의 이름, 금오(金烏)를 연상케 한다
산 아래에 걷기 좋은 길, 금오산 올레길을 마주했다. 도립공원 안에 자리한 금오지를 둘러보며 걷도록 조성한 이 길은 천천한 걸음으로 40분 정도면 완주 가능하다. 흙길과 숲길, 덱을 따라 산책하며 다각도의 풍경을 눈에 담아보길 추천한다. 사시사철, 다른 매력을 선사하지만 한겨울의 금오지는 조금 더 고요하고 안락하게 여행자를 품어 준다.
올레길 초입에 자리한 동상의 주인공은 독립투사 박희광 선생이다. 그는 16세부터 항일독립군 대원으로 투쟁했으며 친일 인사를 처단하는 암살단으로도 활동했다. 뤼순감옥에서 20년이나 옥고를 치렀으나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서사를 눈으로 읽어 내리며 잠시 머물러봐도 좋겠다.
▲ 금오산 올레길 풍경. 너른 금오지를 따라 걷는 2.4km 수변 산책길이다
구미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각산마을 금리단길에는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꾸민 공방과 카페, 소품 숍과 맛집 등 즐길거리가 그득히 들어찼다. 빵 굽는 냄새, 원두 볶는 향이 불쑥 코끝을 스칠 때면 살며시 드러나는 공간들은 각자의 멋과 이야기로 반짝거린다. 최근 경상북도교육청 구미도서관에서는 ‘책 읽는 금리단길’이라는 테마로 카페 6곳을 선정해 ‘마음, 그림책, 여행, 디저트, 시, 미술’이라는 주제로 큐레이션한 도서를 지원했다.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처럼 지도를 따라 걸으며 카페를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외에도 색다른 도서를 찾아보고 싶다면 독립서점 ‘책봄’을 방문하길 추천한다. 대형서점과 사뭇 다른 공간에서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자를 반기는 정겨움이 가득한 이곳에서 책과 함께 여유롭게 여행의 묘미를 누려보길. 하루 끝에 정성껏 고른 책을 읽으며 마음에 닿는 문장 하나 새겨보는 것도 좋겠다.
▲ 책 읽는 금리단길 카페 8곳 중 하나인 '카페무이'. 커피와 책, 가죽 공방이 어우러진 곳이다
▲ 독립서점 '책봄' 내부. 대형서점과는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 책 읽는 금리단길 북카페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