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다
챗지피티 시대, 사람만의 일은 무엇일까

2022년 11월 30일 거대언어모델 기반의 대화형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가 공개된 이후, 전 세계는 인공지능의 놀라운 능력에 충격을 받았다. 프로그램 코드 작성, 대입 수능시험 통과, 소설 쓰기, 변호사 자격시험 통과 등에서 챗지피티 활용 사례가 알려지면서 2016년 알파고 때와는 달리 경탄과 탄식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구본권(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는 “인공지능 시대가 열렸다”는 글을 올려 챗지피티가 자신이 1980년대 접한 그래픽사용자환경(Graphical User Interface)만큼 혁명적인 기술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정보화 혁명은 소수 전문가들의 도구였던 컴퓨터를 만인의 도구로 만든 GUI 덕분이다. GUI는 프로그램 명령어를 몰라도 아이콘을 눌러 누구나 컴퓨터를 이용하게 했고, 스마트폰 혁명을 가져온 기술적 배경이 됐다. 이번엔 챗지피티가 거대한 인공지능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고다.

챗지피티 충격은 인간 고유의 지적 도구인 언어를 기술 조작법으로 삼은 데 기인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Hrari)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듯, 언어는 인간 문화의 운영체제”라며 언어에서 신화와 법, 국가, 예술과 과학, 돈, 컴퓨터 코드가 나온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거대언어모델 학습을 통해 언어의 달인이 됐다는 것은 기기 조작 수단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인공지능의 새로운 언어 숙달은 이제 문명의 운영체제를 해킹하고 조작할 수 있음을 뜻한다”는 게 하라리의 경고다.

기술 발전에 따라 일자리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국제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미국과 유럽에서 일자리 3억개를 대체할 것이며, 미국 노동자들의 직무 약 70%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로그램 명령어를 몰라도 일상 언어로 강력한 인공지능을 조수처럼 부릴 수 있는 상황은 동화 속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프롬프트에 질문을 던지거나 요청을 하는 것은 마법의 주문을 외우는 것과 비슷하다. 알라딘의 마술 램프, 해리 포터의 마법 주문처럼 희한한 요청을 하더라도 인공지능은 눈 깜짝할 새 답변을 내놓는다. 챗지피티가 ‘환각 현상’ 없이 유용한 결과를 내놓도록 질문하는 기술을 다루는 신종 직업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마법학교에서 실수 없이 주문 외우는 법을 배우는 학생처럼 여겨진다.







챗지피티 시대에 마법 주문 외우는 법을 익히는 것은 얼마나 유용할까?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인터넷 초기의 정보검색사 운명이 될 거라는 전망이 많다. 자연어 검색 기술이 발달하면서 정보검색사는 금세 사라졌다. 기술 장벽은 점점 낮아져 평평해질 텐데, 그 시점에서 중요한 능력은 무엇이 될지가 인공지능 시대의 교육과 직업 탐색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다.

챗지피티와 동화 속 마법을 비교할 때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소중한 마지막 소원을 몸에서 소시지를 떼어내는 데 쓸 수밖에 없었다는 <세 가지 소원> 동화다. 마법처럼 강력한 기술을 누구나 자유로이 쓸 수 있는 환경에서 중요한 것은 그 힘을 어디에, 무엇을 위해 사용하느냐의 문제다. 누구나 욕망한 대로 도구를 쓸 수 있는 환경에서 어떠한 개인적·사회적 통제체계를 마련해야 하는지도 과제다.

챗지피티,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가 우리 손에 쥐어진 환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과제를 던진다. 하나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인공지능 환경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똑똑한 기계나 다른 사람이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다. 결국 길을 선택하는 자신에게 모든 것이 위임된 세상이다.

인공지능 시대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질, 삶의 의미에 대해서 더욱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우리에게 기계가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없는 모방 불가능한 인간의 능력이 무엇인지 묻는다. 기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력 있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 만의 고유한 기능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을 넘어서는 질문이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똑똑해지면서 사람이 해오던 많은 일을 기계가 대신하는 상황에서 ‘인간이 인간다워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결핍과 그로 인한 고통이다. 인류의 역사와 문명은 이러한 결핍과 고통에서 느낀 감정을 동력 삼아 발달시켜온 고유의 생존 시스템이다. 위험과 결핍은 두렵고 고통스러웠지만 인류는 놀라운 유연성과 창의적 능력으로 대응 체계를 만들어냈다. 결핍과 고통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인류가 경험을 통해 체득한 생존 노하우가 유연성과 창의성이다. 결핍에서 오는 절박함이 만들어낸 인간의 유연성과 창의성은 기계에게 가르치기 불가능한 속성이다.


“사람이 모인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챗지피티가 아무리 유창한 언어능력을 지니더라도 여전히 대체될 수 없는 사람만의 일이다.”

그래서 인간의 약점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계와 구별되는 최후의 요소다. 기계는 설계하는 대로 작동하고 우리는 사람의 결점과 단점을 벗어나기 위한 의도로 기계를 설계한다. 부정확한 인식과 판단, 감정에 의한 변덕스럽고 비합리적인 행동, 망각과 고통 같은 사람의 속성을 기계에 부여하지 않는다.

인간은 우리가 기계에 부여하지 않을, 이러한 부족함과 결핍의 존재다. 하지만 거기에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가야 할 사람의 길이 있다. 똑똑한 기계가 사람의 지능을 넘어서고 많은 직무를 대체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사람만이 해야 하는 영역은 여전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적응하는 방법은 경쟁이 아닌 공존과 공생이다. 똑똑한 기계와 경쟁하기보다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속성 그리고 그로 인한 세상의 변화를 아는 것이 먼저다. 우리는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미래를 살아간다. 사람이 모인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소통과 공감의 능력은 챗지피티가 아무리 유창한 언어능력을 지니더라도 여전히 대체될 수 없는 사람만의 일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는 이렇게 말한다.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 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 ” 시인이 말하는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힘은 감정과 호기심을 말한다. 기계가 따라 할 수 없는 사람만의 특성인 사랑과 호기심은 감정적 결핍과 지적 결핍에서 나온다. 감정과 호기심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마법의 불인 동시에 우리 자신을 불쏘시개와 연료로 만들어버리는 치명적인 에너지라는 시인의 통찰은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은 어떻게 사람다울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구본권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디지털 인문학자. 한겨레 기자로 일하며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빛과 그늘을 함께 보도해온 IT 전문 저널리스트로 기술과 사람이 건강한 관계를 갖기를 바라며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저서로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로봇시대, 인간과 일>, <유튜브에 빠진 너에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