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다
나를 존중하는 일이 곧
곧 상생을 향한 첫걸음
방승호 모험상담연구소 소장

‘인생 노잼’을 외치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꿈을 찾게 만든 전(前) 아현산업정보학교 방승호 교장. 인형 탈을 쓰고 학생들에게 명함을 돌리는가 하면 화장실 앞에서 버스킹을 한 그의 ‘괴짜’ 교장 생활은 다큐 영화 <스쿨 오브 락>에 소개된 바 있다. 지난 2월 말 퇴직해 학교를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기타를 메고 상담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은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자 상생하는 만능열쇠이기 때문이다.

Q. 어느덧 9집 앨범을 발표한 어엿한 가수이십니다. 최근 앨범 <콜드블루-둘레길>은 래퍼 아웃사이더와 함께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만들어 호응이 뜨겁다고 들었어요.
A. 콘서트를 앞둔 조용필 님보다 이번 앨범에 관한 기사가 더 많은 듯합니다.(웃음) 무척 감사한 일이죠. 학교에서 상담을 해보면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대체로 폭력 문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돌림을 당한 한 학생이 ‘구겨진 상자 안에서 사는 기분’이라고 말한 게 가슴에 와닿았고, 학폭 문제를 노래로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상담했던 학생에게 같이 노래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이 이번 앨범의 시작이었지만, 운이 좋게 래퍼 아웃사이더 님과 인연이 닿아 힙합 장르에 도전해보게 되었네요. 학생과도 꾸준히 인연을 이어간 끝에 최근 또 다른 음악 작업을 마쳤습니다. 그 노래도 곧 세상에 선보일 예정이에요.
Q. 학교에서 노래하는 교장 선생님으로 유명하셨어요. 금연을 응원하는 ‘노타바코송’을 비롯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아이들을 상담할 때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던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 꿈은 무엇이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꿈을 실현한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은 무게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음반을 내는 게 제 꿈이었단 걸 깨닫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어요. 노래를 하면서 느낀 점은 문화의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겁니다. 학교에서 버스킹 한 번 했을 뿐인데 교내 분위기가 확 달라졌거든요. 학교가 재미있는 곳으로 변하니 지각생과 결석생이 사라지고, 담배 피우는 학생이 되레 이상해지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흡연율이 ‘0’이 되었어요. 아이들이 학교 가는 걸 즐기게 되자 학교에서 꿈을 찾기 시작했고요. 학교폭력 문제도 자연히 사라졌습니다. 대부분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그 문제를 없애는 데 집중하지만,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만으로는 전체를 바꿀 수 없습니다.
Q. 상담 전문 교사도 아닌데 재직 당시 매일 상담을 하셨다고요.
A. 교사로 처음 부임했을 때는 어떤 선생이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습니다. 나 스스로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유독 학교를 어려워하고 공부 못하는 학생들에게 마음이 쓰이긴 했지만요. 평소 시답지 않은 농담을 즐기고 너스레를 잘 떠는 편인데요. 사람들을 웃기는 게 제가 가진 유일한 재능입니다. 그래서 수업도 늘 재밌게 하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재밌게 해줄지 고민한 끝에 레크리에이션 자격증을 취득했고 그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자격증 덕분에 미국으로 모험놀이 상담 연수를 가게 되었거든요. 당시 우리나라는 한 사람만 잘못해도 단체기합을 받는 분위기였는데 미국에서는 손잡고 노는 게 상담이라고 하더군요. 머리가 확트이는 느낌이었습니다. 학교로 돌아와 곧장 상담을 자처했어요. 배운 내용을 토대로 저만의 상담 방식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도 했고요. 그때 시작한 상담이 교장이 되어서까지 쭉 이어진 겁니다.

Q.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인생이 바뀌고, 가장 많이 변화하고 성장한 사람이 선생님 본인이라고 하셨습니다.
A.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대체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갇혀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상담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어렵지 않아요. 간단한 놀이로 마음의 문을 열고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요. 이때 아이 스스로 자각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게 포인트예요. 그런데 제가 그런 경험이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니 저 역시 자각하고 성찰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아침마다 명상과 운동, 글 쓰는 일과를 빼놓지 않아요. 처음부터 상담이 천직이었다기보다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과 제가 서로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게 된 셈입니다.

Q. 소위 문제아로 불리는 아이들도 선생님 눈에는 천사로 비쳤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A. ‘문제아’라는 건 고정관념입니다. 문제아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있으면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아는 대로 보게 마련입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고정관념이 없고 사회적으로 학습된 언어에서 분리되는 일이지요. 제가 학교에 PC방을 만들었는데요. 아마 세계 최초였을 거예요. 아이들이 게임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가정 사정, 친구 문제로 공부를 포기하고 오히려 게임으로 위로받게 된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학교에 e-스포츠학과를 신설할 때 처음에는 반대가 거셌지만 결국 그 아이들이 세계 대회에서 당당하게 1등을 거머쥐었습니다. 우리가 공부를 10시간씩 한다고 중독이라고 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왜 게임만 중독이라고 표현하는 걸까요. 이런 게 고정관념이죠.

Q.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준 선생님의 노력이 아이들의 태도를 바꾸고 그 결과 흡연 근절, 학교폭력 제로라는 수치로 나타났습니다. 상생하는 여건을 만들려면 우선 나 한 사람의 행동이 중요한 것 같은데요.
A. 제 인생의 모토가 ‘나눔’입니다. 교직에 몸담은 35년 동안 평일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상담했고, 주말이면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상담과 강의를 나눴습니다. 처음부터 봉사를 할 생각은 없었어요. 일개 교사가 상담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강의까지 하게 되자 시기하는 시선이 생겼고 그게 불편해서 무상으로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지속하다 보니 재능기부로 대통령상까지 받게 되었고요. 어떤 종교든 ‘자기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란 말이기도 하지만, 나 좋으라고 하는 일이 아니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상담과 강연 봉사가 제 마음 편하자고 시작한 일이었듯이 말입니다. 대가가 없다는 점에서 나눔과 희생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희생은 피곤하고 힘들어서 오래가지 못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피곤하기는커녕 정말 즐거웠어요. 아이들 스스로 성찰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가장 큰 기쁨이자 보람이었죠.
Q. 나눔이 선생님의 에너지 원천이었네요. 나눔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서로 상생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함께 잘 살려면 결국 ‘나눔’이 해법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나눔을 실천해볼 수 있을까요?
A. 우선 내가 잘 살아야 합니다. 가진 게 없으면 나눌 것 역시 없으니까요. 나눔과 희생의 차이는 자기 성장에 있습니다. 상담을 받은 아이들 중에 인연이 계속 이어지는 경우는 성장을 이룬 부류입니다.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관계일 때 만남이 지속된다는 점에서 상생을 위해서도 성장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죠. 개인이 성장하려면 성찰이 빠질 수 없는데요. 우리가 나를 잘 알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선 내가 나를 보물처럼 여겨야 합니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면 남을 대하는 방식도 저절로 바뀝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보물처럼 여긴다면 함께 잘사는 사회는 자연히 이루어질 테고요. 나를 아는 일이 어려운 분들께 한 가지 팁을 드릴게요. 첫걸음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는 겁니다. 추구하는 목표가 생기면 성장은 뒤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눈떴을 때 내가 좋아하는 일 10가지를 써보세요. 그중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일 한두 가지를 주말에 시도해보세요. 어릴 때 잘했던 일과 연관이 있으면 더 재미있겠죠. 재미를 추구하다 노래를 부르게 되고, 노래가 상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제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개인이 행복해져야 이타적인 삶도 가능합니다.

방승호
가수, 작가, 강연자 등 다양한 ‘부캐’를 보유한 국내 최초 모험놀이 상담가. 교장 퇴임 후 자체 설립한 모험상담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상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 저서로 <노래하는 교장 방승호의 마음의 반창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