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재무적인 요소인 ESG가 경영활동을 평가하는 또 다른 잣대가 되면서 에너지 기업들은 에너지 생산방식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며 설비를 새로 도입하는 등 ESG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제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ESG 경영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현재 에너지 기업 앞에 놓인 변화는 어떤 것이며, 앞으로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에너지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겠다.
비재무적인 요소인 ESG가 경영활동을 평가하는 또 다른 잣대가 되면서 에너지 기업은 선한 기업과 악한 기업이라는 이분법적 틀에 갇혔다.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기업은 선한 기업이고, 석탄 등 기존의 화석연료만을 고집하고 사용하는 기업은 악한 기업이 되었다. 투자자들 역시 자신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악한 기업들을 배제하기 시작하였다. 에너지 기업들은 화석연료의 사용과 이를 통한 에너지 생산을 줄이고,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로 기존의 에너지 생산을 대체하며 설비를 새로 도입했다. 그러던 중 두 가지의 큰 변화가 글로벌 경제에 들이닥쳤다.
# 첫 번째는 팬데믹 상황이 점차 종료되고 있다는 점이다.
ESG가 급속하게 확산한 데는 분명히 팬데믹 상황이 큰 영향을 끼쳤다. 코로나19라는 지구적 전염병이 돌면서 인류는 기존의 경제활동이 인류에 끼친 악영향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ESG라는 인류적 보편 가치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며 미래에는 기업이든, 국가든 앞으로 어떠한 활동을 하든 간에 환경을 돌보고 사회적 책임을 지며 투명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계기가 되었던 펜데믹이 점차 종언을 알리고 있다. 이제 다시 실물 경제가 활발하게 재가동되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암호화폐 등 자본의 흐름에만 의존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원재료가 공급되고 생산되는 재화의 흐름으로 복귀하고 있는 것이다.
# 두 번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의 전쟁 발발이다.
강대국들이 국지전에 우회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있어도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이 직접 전쟁에 개입하는 일이 21세기에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인류였다. 그런데 실제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은 공급망 특히 에너지 공급망의 위기를 급속히 가져왔다. 러시아는 가스관을 잠그는 등 유럽에 공급하던 에너지를 조절하며 에너지를 하나의 국방자원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은 에너지 비용이 급상승하며 화석연료를 다시 사용해서 당장 생활의 위기를 넘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럽의 일부 국가는 샤워도 제한하고, 옷도 목폴라를 입게 하는 등 에너지 자구책을 강하게 펼치고 있고, 고액의 난방비를 감당하지 못해 다가오는 겨울에 선진국들이 동사(凍死)를 걱정하게 이르렀다.
투자 측면에서도 투자운용사들은 고수익을 위해 다시 전통적인 에너지 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전쟁이 발발하자 심지어 무기산업 등에 활발히 투자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ESG는 팬데믹 상황에서 개화(開花)하였지만, 경제환경의 드라마틱한 변화로 재조정될 필요가 생겼다. ESG가 단순히 개념적인 황금률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여 인류가 공존하고 지속가능할 수 있는 경영요소로 변화되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그간 ESG 시대에 특히 환경(E)에 대한 각종 대책과 약속이 많이 나왔지만, 오히려 ESG에 천착(穿鑿)하다가는 인류와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되기 어렵다는 반론이 적잖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또한 ESG의 과속으로 인한 부작용, 특히 공정전환(fair transition)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급변한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에너지 기업은 ESG를 기존의 관념으로 고집해서는 안 된다. 즉, 2018년의 ESG와 2022년의 ESG는 분명히 다르다. ESG가 처음 등장한 2004년에는 ESG는 ‘골칫덩이’(issue)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ESG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2004년의 ESG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ESG는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토대이다. 그렇기에 2022년의 ESG는 지난 3~4년간의 실행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고, 현실적으로 어렵거나 과도한 비용 등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실제 인류가 예기치 못한 문제에 부딪히지 않도록 예방하는 이니셔티브가 되어야 한다.
ESG 시대에 에너지 기업은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하며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되, ESG의 경착륙으로 인류가 입게 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여야 한다. 2015년 UN은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발표하면서 그 완료 시점을 2030년까지로 하였다. 실행 기간을 자그마치 15년으로 잡았다.
ESG는 그렇게 급히 ‘한 번에 되는’(once and done) 경영요소가 아니다. 에너지 기업은 본질적으로 인류의 생존, 기업의 번영과 직접 연결돼있다. 즉, 사람으로 치면 심장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에너지 기업인 바, 맥박이 너무 늦어도 문제지만, 너무 빨리 뛰는 것 역시 큰 문제이다. 예를 들면 에너지 기업이 고가의 재생에너지만을 생산하느라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는 저가의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아서 그 지역에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 또한 결코 ESG의 기본 정신이 아니다.
저탄소 에너지만을 고집하다가 에너지 효율이 낮은 에너지원으로 기업의 경영이 악화되는 것 역시 이해관계자를 위한 경영이 아니다. ESG의 기본 실천 방법은 균형(balance)과 통합(integration)이다. 에너지 기업의 탄소중립 정책은 이해관계자를 모두 고려하고, 급변하는 경제 상황을 반영하여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끊김이 없이 최적화하며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