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가 무엇인지 공부한 해가 2021년이었다면 ESG를 실행하는 해가 2022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기업이 ESG가 오래갈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한때의 ‘패션 경영(fashion management)’으로 ESG가 끝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 속에 기업들은 과다한 투자나 전략적 집중을 망설이고 있기도 하다. ESG의 수명을 알고 싶다면 ESG가 왜 중요해졌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이번 호에는 ESG가 왜 이토록 급부상하였는지부터 알아보겠다. ESG가 앞으로도 지속될지 판단하는 좋은 가늠자가 될 것이다.
글 문성후(한국ESG학회 부회장, [부를 부르는 ESG] 저자)매경이코노미 2019호에 따르면 재계가 ESG에 공들이는 이유 5가지로 해외 투자유치, 주가 관리 수단, 환경 문제 관심 급증, 평판의 중요성, MZ세대의 가치소비를 들었다. 필자는 ESG가 중요해진 이유로 크게 3가지를 든다. 첫 번째는 투자자의 변화이다. 거대 자본의 집중으로 유니버설 오너라고 불리는 거대 자산운용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흔히 미국의 ‘빅 3’를 든다. 블랙락(BlackRock), 뱅가드(Vanguard), 스테이트 스트릿 글로벌 어드바이저스(State Street Global Advisors)가 빅 3이다. 이들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 같은 거대 금융기관이 무너진 후, 약 10여 년 사이에 등장한 투자 업체들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이 기업들은 현재 S&P 500 기업의 평균 지분을 20% 이상 보유하고 있다. 2019년 6월 발간된 ‘미국경제연구국(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보고서에 따르면 빅 3가 소유한 주식이 S&P 500대 기업의 의사 결정에서 활용된 비율은 평균 25%였다. 동 연구국은 ‘이 빅 3가 앞으로 20년 이내에 기업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비율은 40%까지 늘 것이다. 그러므로 정책입안자 등은 거대(giant) 빅 3의 관점을 인식해야 한다’라고 경고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투자자이자 글로벌 자산 운용사 중 한 곳인 블랙락의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이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ESG의 중요성을 설파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19년부터 적극적으로 ESG 화두를 선점하고 기업의 ESG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매년 주주들에게 서한을 보내는데 2019년 서한에서는 ‘블랙락은 환경 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사가 요구하는 환경 경영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언제든 투자한 회사에 대해 반대표를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하였다. 2020년 그의 서한은 더 ESG를 강조하였다. 2020년 서한에서 그는 ‘기업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폭넓게 이해관계자들을 아우를 수 있어야만 장기적인 이익 달성이 가능하다’라고 하며 기업의 목적과 이해관계자들의 이익 정렬을 강조하였다. 2021년 래리 핑크는 ‘경제적 불평등 또는 지역사회 참여에 대한 질문은 종종 ESG 대화에서 ‘S(사회)’ 문제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러한 범주 사이에서 그러한 뚜렷한 선을 긋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는 이미 전 세계 저소득층 커뮤니티에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E의 문제인가? S의 문제인가?’라고 말하며 아예 ESG를 큰 틀에서는 통합적으로 다루자고 제시하였다. ESG가 중요해진 첫 번째 이유는 연기금이나 블랙락과 같은 기관투자가 혹은 자산운용사에서 ESG 경영을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이에 따라 투표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CSR과 달리 ESG는 학자나 NGO가 아니라 돈을 들고 있는 투자자가 이처럼 투자받는 회사에 경영 요소로 삼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ESG가 중요해진 이유 두 번째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후 위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예전에는 기후 이상과 같은 대규모 자연 재난은 조업 중단이나 생산 시설 파괴 등의 피해였고 대부분 물질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기업들도 대부분 화석 연료를 사용하였기에 기업들은 환경 훼손을 금전적 보상으로 상쇄(trade-off)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해관계자가 강하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주문하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환경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생기면서 기후 위기를 포함한 자연환경 보호, 보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환경과학, 기후과학의 급격한 발달은 화석 연료 사용 등과 같은 인간의 활동과 기후 이상과의 인과관계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이젠 기업의 사회공헌과 금전기부도 더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생태계 훼손의 보상책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원래 지속가능발전이란 미래세대의 환경 자원 등을 훼손시키지 않고 현재 세대가 당대에서 자신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기업들도 현재 세대에서 환경을 개선하거나 유지하거나 보호해 후대에 물려줄 책임을 지고 있고, 그러한 책임이 ESG로 발현된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자발적인 친환경 기업들도 태어났다.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 의식과 이해관계자의 요구, 기후과학의 발전이 모두 ESG 중 환경 요소를 과학화하고 계량화하는데 일조한 것이다.
최근 ESG가 급부상한 이유 세 번째는 ‘기업 평판’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ESG와 기업 평판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글로벌 컨설팅 회사 KPMG가 2018년 약 900명의 이사회 멤버와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ESG를 하는 이유를 투표했는데 ‘회사의 평판/브랜드에 대한 잠재적인 영향’이 54%로 1위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ESG 컨설팅 업체 ERM이 기후변화에 집중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기업들에게 물었더니, ‘주요 이해관계자에게 평판이 악화됨’이 49%로 1위를 차지하였다. 전경련도 2021년 실시한 한국 매출 500대 기업 조사 결과 ESG가 필요한 이유를 조사했더니 응답기업의 43.2%가 ‘기업 이미지 제고 목적’이라 답하였다. 평판은 분명히 ESG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기업 평판’은 무엇일까? 기업 평판이란 ‘이해관계자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기업에 대한 사회적 기억(social memory)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이미지라고 하면 ‘mental picture’를 떠올리기 쉬운데 기업의 이미지는 단순히 ‘심상(心象)’이 아니다. 기업 이미지란 ‘이해관계자들이 가진 사회적 기억의 총합’, 즉 평판이다. 평판은 돈으로 홍보하고 만약 잘 안되면 시장에서 회수할 수 있는 ‘브랜드’와도 다르다. 기업은 외부 평판도 잘 관리해야 하지만 내부 평판도 잘 다루어야 한다. ‘포브스’라는 경영잡지에 게재된 ‘평판 관리: 건전한 ESG 정책을 개발하기 위한 세 가지 전략적 접근 방식’에 따르면 ‘ESG와 기업 문화의 결합’은 무척 중요하다. 기업이 ESG 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ESG가 회사의 기업 문화와 사명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의 동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본 아티클에 따르면 기업의 목적과 기업 문화가 결합하면 조직의 모든 내부 구성원들이 가치 제안에 대해 동일한 헌신을 공유할 수 있다. 즉, 직원들도 ESG가 기업이 하는 노력의 일부라고 느끼면 조직을 지지하고 성과를 만들며 기업도 성장할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는 것이다. 기업이 ESG의 목적을 직원들에게 진정성 있게 알리고 기업 문화와 잘 결합한다면 ESG 경영은 기업의 내부 평판도 높여주고 ESG 경영에 대한 직원들의 헌신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해진 ESG가 그만큼 긍정적인 효과를 기업에게 가져다줄 수 있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기업이 ESG를 잘하면 다음과 같은 효과를 거두게 된다고 한다. 첫째, ESG를 실행하면 평판도 좋아지고 회사의 매력도가 높아져 우수 인력이 모여들게 되며 근무 태만이나 결근이 더 적어져 생산성이 올라간다. 둘째, ESG 경영 성과가 우수한 기업들은 자본 조달에 제약이 적고 자본 조달 비용이 낮아지게 된다. 셋째, ESG 경영 성과가 높은 기업들은 정부의 정책 입안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커져 자사에 유리한 정책을 도출할 수 있으며 정부 조달 계약을 더 따내는데 상대적으로 성공적이다. 넷째, ESG 공시 내용이 충실한 기업은 주식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을 보여 기업은 자사의 평가 가치를 보호할 수 있다. ESG가 기업에게 유무형의 가치를 제공해 준다는 데에는 업계도 이론(異論)은 없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 분기별 리포트 ‘ESG가 가치를 창출하는 5가지 방법(Five ways that ESG creates value)’에는 강력한 ESG 제안이 재정적으로 기업에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지 설명되어 있다. 첫째, ESG 제안은 소비자의 제품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고 지역사회와 정부와의 강한 관계를 통해 자원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접근을 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한다. 둘째, 기업의 에너지 소비를 낮추고 물 소비를 줄여 비용을 절감할 것이라고 한다. 셋째, 탈규제를 통해 더 훌륭한 전략적 자유를 달성할 것이고 보조금과 정부의 지원을 획득할 것이라고 한다. 넷째, 종업원의 동기를 북돋우고 더 큰 사회적 신뢰로 인재들을 영입할 것이라고 한다. 다섯째, 장기적으로 더 훌륭한 자원 배분으로 투자수익이 증가하고, 환경 이슈 때문에 회수하지 못할 투자를 회피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이유로 ESG는 점차 기업에게 변수가 아니라 ‘상수(常數)’가 되어 가고 있다. ESG는 기업이 잠시 고려해야 할 일시적인 변수가 아니라, 마치 환율이나 유가처럼 늘 기업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경영 요소가 되고 있다. ESG는 일시적일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ESG를 단순히 하나의 단어로 보기 때문이다. ESG가 중요해진 이유를 알고 각 이유를 파보면 ESG가 금방 사라질 경영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ESG를 해야 하는 이유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훨씬 강하다. 그러니 기업은 이제 ESG를 상수로 보고 제대로 공부해서 정확히 실행해야 한다. 2022년이 기업에게 ESG 실행의 원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