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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짜증이 심하게 나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상대방의 태도에 순간적으로 화가 폭발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런 감정을 우리는 ‘짜증’이라 부른다. 일상생활 중 갑자기 짜증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호에는 짜증의 원인과 짜증이 나는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글 임찬영(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조교수)
❝ 요즘 들어서 순간순간 짜증이 나는 경우가 많아요.
제 성격이 그렇게 모난 편은 아니었는데 요즘에는 스스로가 너무 예민하다고 느끼게 돼요.
상사가 지나가다 한마디만 해도 순간적으로 화가 나고,
동료 직원이 별거 아닌 것을 부탁하는데도 괜히 감정이 상하기도 하네요.
얼마 전에는 저도 모르게 욱했다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기도 했어요.
회사에서는 화를 꾹 참고 일을 하다가도 집에만 가면 가족들에게 더 짜증을 부리곤 해요.
별 것 아닌 일로 괜한 가족들에게 울컥하고 나면 마음이 좋지가 않아요.
이러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짜증을 부리는 게 반복되고 다시 자책하곤 하네요. ❞

요즘 짜증을 많이 부리는 나, 문제일까요?

살면서 짜증을 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은 당연히 없을것이다. 우리는 모두 가끔은 짜증을 낸다. 그렇게 흥분할 일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울컥해 화를 내곤 한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는 스스로가 너무했다는 생각에 자책을 느끼고 사과를 할지 망설이기도 한다. 다시는 안 그래야겠다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짐하면서도 이런 일들이 반복되곤 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는 이렇게 살아가곤 한다. 짜증이 나는 일에는 짜증이 나고 화나는 일에 화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짜증을 내는 빈도가 너무 잦은 시기가 있다. 정말로 별거 아닌 작은 일인데도 감정 조절이 안 되어서 크게 흥분하고 화를 내면서 몽니(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부리는 성질)를 부리는 시기가 있다. 만약 원래부터 짜증이 많고 화가 많은 사람이라면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고 이해를 할 수도 있지만, 평소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요새 왜 이렇게 짜증이 많이 날까요?

콜롬비아대학 조나단 레바브 교수가 시행한 심리실험에서 모의재판을 진행했다. 실험참가자가 판사 역할을 했고 잘못은 분명히 했지만 사정이 있는 억울한 피의자를 용서해줄지 아니면 엄격하게 유죄를 내릴지를 결정을 해야 하는 실험이었다. 참가자들은 온종일 여러 개의 사례를 읽어보면서 바쁘게 판결을 내려야만 했다. 실험의 결과가 아주 재밌다. 실험참가자들이 실험을 처음 시작할 때나 점심시간 이후처럼 컨디션이 좋은 시점의 판결에서는 대체로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이전, 스트레스가 긴 심리 상태에서는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해 유죄를 내리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우리가 짜증이 나는 것도 이 실험의 결과와 비슷한 면이 있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의 우리는 관대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어도 좀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면서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는 걱정이 많아서 그런지 밤에 잠도 좀 설치고 피곤해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이다.
이때는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직원이 있으면 너무 거슬린다. 나를 괴롭히고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으면 크게 화가 나고 감정 조절이 안 되곤 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작은 일에도 견디지 못하고 크게 짜증이 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짜증이 나는 상황은 마치 물이 끓는 것과 유사하다. 물은 100℃가 되면 끓어오르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이미 70~80℃까지 끓어있다면 어떨까? 아마 조금의 자극, 조금의 스트레스만 주어진다면 확 끓어오르게 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좀 더 차분하고 평화로워서 30~40℃ 정도의 낮은 온도의 상태로 유지가 되었다면 그냥 지나가는 스트레스 정도로 끝날 수 있는 일이 내 마음이 안 좋을 때는 세상 짜증이 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짜증이 나는 이유는 어쩌면 외부의 상황 때문이 아닐 수 있다. 나의 상태가 짜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쳐있는 상황에서는 외부의 거슬리는 상황 하나하나가 기폭제(trigger)가 되어 짜증이라는 감정으로 표현이되는 것이다.

짜증을 부리는 제가 너무 싫게 느껴집니다

이런 시기를 보내는 나를 무작정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짜증이 많이 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마음의 신호일 수 있다. 요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제대로 쉬지 못해 피로가 한계까지 쌓여있는 상태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 느껴지는 짜증을 계속 내버려 두면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
밖에서는 겨우 참다가 가족과 같이 가깝고 의지가 되는 내 사람들에게 폭발하게 되어 버리기도 한다. 분노와 화가 커졌음에도 속으로만 눌러놓다 보면 이게 몸으로 표현된다. 때로는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근거림을 느끼고 원인 모를 두통, 어지럼증, 소화불량 등으로 나타나기도한다. 이런 마음을 방치하고 오히려 몰아붙이게 되면 공황증상, 만성불면, 우울증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있는 법이다. 정해진 에너지를 가지고 업무도 보고 가정도 돌보고 해야 한다.
그런데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자아고갈상태, Ego deficit state)라면 이전에 건강할 때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크게 불편하게 느껴지고 짜증, 분노, 화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짜증을 자주 부리는 지금의 나를 탓하지만은 않았으면 한다. 나를 반성하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내가 지쳐있는 상태구나’, ‘휴식이 필요하구나’, ‘삶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구나’ 이런 식으로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역시 필요하다.

이전의 건강한 나로 돌아오는 방법이 있을까요?

짜증이 자주 난다는 것은 지금 삶에서 변화를 줘야만 한다는 신호이다. 이런 지쳐있는 상태에서는 자신을 더 쥐어짜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잘 쉴 수 있을까?
스트레스 상황과 거리를 두는 시간과 그리고 장소가 필요하다. 대개 우리의 주된 스트레스는 아마 ‘일’ 때문일 것이다. 퇴근할 때 몸은 퇴근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계속 회사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마음 속에서도 작업복을 벗고 제대로 퇴근을 해야 제대로 쉴 수가 있다. 직장에서의 걱정과 스트레스는 직장에 두고 퇴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게 완전히 100% 잘 되는 사람은 없다. 걱정과 고민이 계속되더라도 이성적으로는 마음에 계속해서 타일러줘야 한다. ‘집에서 고민해야 하는 내용은 없다고, 집에서 고민해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미 해결이 되었을 것이라고, 지금은 퇴근한 시간이고 나는 나의 삶에 집중하겠다’라고. 몸은 집에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직장 생각을 계속 하면서 나를 괴롭히지 않고 퇴근 이후의 삶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 가족과 손잡고 산책을 하고 웃으면서 TV를 보고 식사하면서 하루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이처럼 별거 아닌 일상의 삶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잘 쉬는 사람이고 건강한 사람이다. 짜증이 많이 난다는 것은 이런 일상의 삶의 비중을 늘리고 눈앞의 시간 그대로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또 하나 완전한 휴식을 취할 것을 권유한다. 마치 컴퓨터의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마음의 자연적인 치유능력에 대하여 ‘항상성(resilience)’이라고 합니다. 이 회복능력이 있음을 믿고 충분히 쉬기를 권한다. 많은 직장인이 ‘쉰다고 좋아질까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보다 휴식의 효과는 커서 아주 그로기(Groggy, 강타를 당해 비틀거리는 혼미 상태)가 된 사람이라도 2주 가량의 시간 동안 현실에서 떨어져서 충분히 쉬어주면 많은 부분이 회복이 되고 이전의 건강한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물론 직장인이 원하는 시기에 충분히 휴식을 취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해야 할 업무도 있고 승진에 대한 경쟁도 있고 미래에 대한생각 등 휴식을 방해하는 많은 현실적인 난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럴때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이다. 아마 앞으로 10년 넘게 근무를 해야 할 것인데 지금 지쳐서 짜증이 가득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나를 몰아붙이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더 큰 독으로 다가올 수있다. 지금 잠깐 쉬면 회복될 수 있는데 나중을 바라보면서 더 몰아붙이다가 몸과 마음이 크게 다치는 경우를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프다. 남에게는 종종 건네는 말들 “힘들면 잠깐 쉬었다가 해”, “길게 보면 잠깐쉬어가는 것은 별 것 아니야”와 같은 말을 나 스스로에게도 해줄 수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