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간절기가 되면 괜스레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변덕이 심한 날씨 탓인지,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 탓인지는 몰라도 하루에도 열 번씩 기분이 오락가락한다. 이럴 때 요동치는 마음을 외면하기보다는 더 스펙터클한 소설을 읽어보면 어떨까?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SF소설을 살펴보면 내게 꼭 맞는 책을 발견할지 모른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정세랑 작가가 쓴 거의 모든 SF단편을 모은 단편집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특히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몰락해 가는 인류 문명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거대한 지렁이들이 인류 문명을 갈아엎는 이야기 <리셋>, 대학 시절 자신을 제외한 모든 여성 회원이 탈주한 동아리에 남겨졌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11분의 1> 등이 부담 없이 읽기 좋다.
전 인류가 초능력을 갖게 된 2049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SF소설이다. 정부와 거대 기업 LK의 탄압에 시달리는 시민들과 초능력을 이용해 봉기를 일으킨 10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경찰의 시선으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추리 미스터리’ 형식이다 긴장감과 몰입도를 끌어낸다며 SF소설 독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통상적인 미스터리나 SF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예기치 않은 반전을 선물한다.
TV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궁금할 수 있잖아요!”라는 말을 남겨 더 유명해진 곽재식 작가의 연작소설집이다. 우주로 인류문명이 확장된 먼 미래, 이미영 사장과 김양식 이사가 이끄는 '은하행성서비스센터'가 온갖 은하를 가로지르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엮은 소설이다. 과학적이거나 역사적인 소재를 가져와 작품 안에 녹이는 곽재식 작가만의 작법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기자 출신답게 날카로운 사실주의적 소설을 집필하는 장강명 작가가 선보인 SF소설집이다. 사랑의 감정을 유지하는 약을 복용하던 커플이 사랑을 자신하고 약을 끊었다가 사랑을 잃는 이야기 <정시에 복용하십시요>, 나치 독일의 학살 책임자 아이히만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아내와 자녀를 잃은 유태인 벤야민이 체험 기계를 통해 서로의 기억을 주입하는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등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