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를 공부하는 이유는 기업이 더 나은 경영을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요즘 ESG 자료들은 ESG의 추세, 장점, 필요성 등만 나열해 놓는다. 그렇다면 왜 ‘ESG’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친숙해졌는데 그 깊이는 더딜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본부터 단단히 배워야 ESG가 몸에 밸 텐데 기본은 건너뛰고 단순히 정보의 양만 늘려가기 때문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ESG도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차근히 되돌아보면 앞으로 ESG가 어떻게 갈지 알 수 있는데, 매일 쏟아지는 지식의 양 때문에 ESG가 지인(知人)이 되기 전에 친우(親友)가 되길 강요받는 상황이다. 이번 호에서는 ESG의 기본과 역사에 대해 제대로 살펴보겠다.
ESG를 설명하면 대부분 UN부터 설명이 나온다. 하지만 ESG의 시작은 UN이 아니다. ESG 하면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소부터 떠올라야 한다. ESG는 이해관계자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1963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소의 내부보고서에서 ‘이해관계자 (stakeholder)’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늘 신경을 쓰고 영향을 주고받는 집단이나 개인이 있기 마련이다. 당시 스탠퍼드 연구소도 잘 유지되려면 잘 보이거나, 잘 지원하거나 하는 이해관계자들(예를 들면 학생, 학교, 기업 등)이 있었고, 그들을 총칭하여 이해관계자라고 불렀다. 이해관계자를 영어로 풀어보면 ‘말뚝(stake)을 지닌 사람들(holder)’이라는 뜻이다. ‘stakeholder’는 서부 개척 시대에 자기 땅을 영역으로 표시하기 위하여 박은 말뚝에서 비롯된 말로 서로 자기 땅이 있어 각자의 이해관계가 각각 있는 사람들을 일컬었다.
이해관계자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에드워드 프리먼(Edward Freeman)’이라는 학자였다. 그는 이해관계자를 ‘조직의 성과에 영향을 끼치거나, 조직의 성과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개인 혹은 그룹’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프리먼 박사는 지금처럼 이해관계자를 존중이나 책임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기업이 성과를 내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대상, 즉 경영 환경의 일부로 보았다. 이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이해관계자 개념과도 일치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관계자는 단순히 객체나 대상이 아니고 주체로 위치가 바뀌었고, 이해관계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등장하게 된다. 즉 이해관계자는 수동적으로 기업이 다루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이 사회적 책임 혹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실현해야 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직원은 단순히 기업에서 월급을 받고 노동을 제공하는 대상이 아니라 직원들 스스로가 기업이라는 법인격을 통하여 기업 문화도 만들고 외부 고객들에게 사회적 책임도 실현하는 주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또 기업도 직원들을 단순히 근로자로 대해서는 안 되고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제공하여 그들이 주도적으로 기업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ESG가 중요한 경영요소로 자리 잡게 했다.
사회공헌활동(CSR)과 ESG의 차이점 중 중요한 것은 CSR은 이해관계자를 단순히 도와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혜택을 베푸는 반면, ESG는 이해관계자를 객체이자 주체로 보고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고객은 단순히 기업의 제품을 팔아야 하는 객체가 아니다. 기업이 고객에게 상품이 좋으면 사고, 싫으면 사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상품이 더 좋아지기 위해 고객의 의사를 듣고, 고객이 바라는 활동을 하고, 고객의 선택을 도와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ESG이다.
그러면 이해관계자는 누구일까? 영어의 첫 글자로 정리해보면 처음에는 ‘ICE’였다. 투자자(Investor), 고객(Customer), 직원(Employee) 의 첫 글자만 따서 ICE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사회(Society), 협력사 (Partner)도 중요한 이해관계자가 되면서 ‘SPICE(스파이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물론 그 외에도 언론도 이해관계자로 포함하고, 다른 나라도 이해관계자에 포함하고 심지어 경쟁사도 이해관계자에 포함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라는 경제단체에서 글로벌 기업 CEO들이 서명한 ‘기업의 목적’에 보면 그들이 존중하고 배려하고 동반 성장하는 대상은 크게 사회, 협력사, 주주, 고객, 직원으로 분류하여 ‘SPICE’를 이해관계자로 분류하였다. ESG를 기업이 잘 실천한다면 누군가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이 바로 이해관계자이다. 이해관계자를 존중하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경영이 ESG 경영의 시작점이다.
ESG의 출발점은 이해관계자라고 했다. 그런데 왜 자꾸 UN이 ESG에서 나올까? 이는 ESG라는 용어를 만든 곳이 UN이기 때문이다.
UN은 1987년 ‘브룬트란트 보고서’라는 문서에서 처음으로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지속가능발전은 우리나라 ‘지속가능발전법’에 보면 ‘지속가능성에 기초하여 경제의 성장, 사회의 안정과 통합 및 환경의 보전이 균형을 이루는 발전’을 말한다. 이 법에 따르면 ‘지속가능성이란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미래 세대가 사용할 경제‧사회‧환경 등의 자원을 낭비하거나 여건을 저하(低下)시키지 아니하고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이 정의는 UN 브룬트란트 보고서의 정의와 거의 일치한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나 2004년 UN에서는 다시 한번 글로벌 기업의 리더들에게 물었다. ‘지속가능발전을 하려면 기업은 어떻게 경영을 해야할까?’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기업들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의사결정 구조(Governance) 이슈들을 잘 대응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기업은 그 당시 주주만을 위한 수익을 내려다보니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무시한 채 종종 환경적 문제를 만들었고,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했으며 의사결정도 투명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경고로 글로벌 기업 리더들은 ESG를 잘 경영하라고 조언했던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늘 강조하는 한가지가 있다. 종종 ESG를 영어로 쓰면 E를 Environment라고 쓰는 실수를 범한다. 그런데 필자는 E를 반드시 Envionmental로 정확히 쓰길 권한다. 왜냐하면 ESG는 기업들에게는 ‘이슈’ 즉 골칫거리였기 때문이다. 2004년 보고서에 보면 ‘환경적,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에 관한 이슈를 잘 처리하라’라고 하며 모두 형용사적 의미로 쓰여있다. 이렇게 ESG는 처음에는 기업들이 처리해야할 문제들이었다. 그리고 ESG 문제들을 잘 처리해야 주주에게 더 돈을 벌어줄 수 있고 기업 평판도 올라간다고 되어 있었다. 약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ESG는 대부분의 기업에게는 이슈이고, 부담이고, 리스크이다. ESG를 경영 기회로 바로 몰아가는 것은 아직은 무리이다. 애초에 이슈였고, 원래 표현도 형용사였다. 정확한 ESG의 기원 즉, 이슈였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기 위하여 Environmental이라는 형용사로 쓰길 권한다. 동시에 ESG는 우선은 잘 처리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잊지 말자.
UN에서 시작된 ‘지속가능발전’개념, ‘ESG’ 용어에 이어 본격적으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유엔 지속가능발전 목표(UN SDGs)’이다. 2016년부터 2030년까지 각국, 기업 등 주체와 관계없이 달성해야 할 인류 공동의 목표로 17가지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가 바로 ‘UN SDGs’이다. 우리나라의 걸그룹 ‘블랙핑크’가 홍보대사이기도 한 UN SDGs는 인류가 직면한 보편적 문제(빈곤, 질병, 교육, 여성, 아동, 난민, 분쟁 등), 지구 환경 및 기후 변화 문제(기후변화, 에너지, 환경오염, 물, 생물다양성), 경제문제(기술, 주거, 노사, 고용, 생산 소비, 사회구조, 법, 인프라 구축, 대내외 경제) 등이 주 내용이다.
ESG 경영의 출발점은 우선 이해관계자의 성장과 발전을 돕고,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속가능발전의 토대이고, 지속가능발전은 결국 이해관계자들이 각자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성실히 수행할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슈로 등장했지만, 지금은 필수 경영요소로 등장한 것이 ESG(환경, 사회, 의사결정구조)였고,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E도 더 세분화되고, S도, G도 더 세분되거나 혹은 다른 강력한 경영요소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비중이 바뀌어도 ESG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분명한 실천과 실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서부발전은 중소 협력기업의 ESG 경영을 선도하기 위해 지원사업에 나섰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중소기업 협력사들이 ESG를 하고 싶어도 여력과 자원이 부족한 경우 한국서부발전이 컨설팅을 통해 협력사의 ESG 취약 부분을 파악하고 향후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내용이다. 2004년 UN 보고서의 제목은 ‘먼저 돌보는 자가 승리한다(Who cares wins)’이었다. 어느 기업이든 ESG에 먼저 관심을 가지고, 이해관계자들을 먼저 돌본다면 그 자체가 바로 ESG의 정도(正道)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