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Therapy

수치심에 대하여


영화 굿 윌 헌팅(1997)

한 잔의 차를 우려내기 위해서는 뜨거운 물을 마다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마음을 열어야 밝은 세상이 보인다. 트라우마를 가진 이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영화 [굿 윌 헌팅]은 마음은 열고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당신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당신에게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반복적인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마음의 방어벽이 생겨난다. 또 언제 어떻게 당할지, 누구에게 배신당할지 알 수가 없으니 세상 누구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어려서부터 의심과 경계의 벽을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벽은 누군가가 선의를 갖고 다가올 때 더욱 견고해진다. “정말 날 선의로 도우려 하는 건가? 혹시 나를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 그렇다. 간혹 상대방의 의도가 진실이란 걸 알게 될 때도 있지만 이때는 대개 그 선의를 비웃는다. “당신은 운이 좋아서 나 같은 상처를 경험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어떻게 당신 같은 평범한 사람이 내 마음속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겠어?” “도움 같은 거 필요 없어! 아니 당신은 날 도울 수가 없어!”
경계를 풀고 속내를 다 보여주면 결국 자신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난 원래 한심한 존재야” “내가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 알면 모두 난 버릴 거야”라는 강렬한 수치심이 자리 잡고 있다. 최선의 방어책은 상대방이 떠나가기 전에 먼저 상대방을 떠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늘 갖고 살아야 한다. 이를 달래보려 술, 섹스, 약물에 빠져보지만 마음의 벽 속에 갇힌 외로움, 공허감, 수치심은 시간이 갈수록 커질 뿐이다.




shame은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반응이기 때문에
인지적 접근은 대개 효과가 별로 없다.
신체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환자를
부끄러움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는 것이다.

- 오노 반 더 하트(네델란드의 심리학자) -




진정한 위로와 치유가 닿기를 바라며

미국 독립 영화의 거장 구스 반 산트 감독의 ‘굿 윌 헌팅’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받아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주인공과 그의 마음을 열려는 치료자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윌은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동네의 건달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기, 도벽, 폭력 전과로 소년원과 감방을 제집 드나들듯 한다. 그의 천재성은 우연한 기회에 제랄드 램보 교수(스텔란 스카스가드 분)의 눈에 띄게 된다.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할 만한 필즈상을 수상했던 램보 교수는 윌이 자신보다 더 큰 잠재력과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러나 충동적인 윌은 공부에 집중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옥에 가야 할 신세가 된다. 그런 윌에게 램보 교수는 감옥에 가는 대신 자신과 함께 수학 연구를 하면서 상담치료를 받아보자고 권유한다. 감옥에 가기는 싫으니 일단 상담치료를 받아보겠다고는 했지만 윌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치료자들을 비웃고 조롱한다. 윌의 마음의 벽은 너무나 견고하여 누구도 쉽게 열지를 못했다. 고명하신 여러 치료자가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물러난다. 할 수 없이 램보 교수는 대학 시절 친구였던 숀 맥과이어 교수(로빈 윌스암스 분)에게 윌 헌팅의 상담을 부탁하게 된다. 첫 상담시간부터 윌은 숀 교수를 밀어낸다. “당신이 정말 날 치료할 수 있어? 내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야?” 라며 그는 숀 교수를 테스트 한다. 숀 교수가 아내를 잃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윌은 “외로워 보이는데 아내가 도망갔느냐?”라며 숀 교수를 일부러 자극한다. 순간적으로 흥분한 숀 교수는 화를 참지 못하여 윌의 목을 조른다. 숀 교수의 이러한 행동은 분명 치료자답지 못하다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니 치료자라고 괜찮은척 할 수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행히도 그토록 분노했음에도 불구하고 숀 교수는 윌을 계속 치료하려 한다. 아마도 윌의 이러한 방어적 태도 이면에 있는 연약한 마음을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


It's not your fault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 상담시간이다. 불행했던 과거를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윌이 피하려 하자 뜻밖에도 숀 교수는 자신의 어린 시절 학대 경험을 먼저 이야기한다. 갑작스러운 숀 교수의 이야기에 윌은 순간 당황한다. 쇼 교수가 어린 시절 경험한 트라우마가 자신이 경험한 트라우마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어. 늘 고주망태였지. 술에 취해 누군가를 팰 생각만 하는 사람 같았어. 난 엄마와 동생이 맞지 않게 하려고 먼저 덤벼들었지. 반지를 끼고 있는 날은 더 재미있었어.” 숀 교수의 이야기가 끝나자 윌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남자는 늘 탁자 위에 렌치와 몽둥이와 혁대를 올려놓고 이 중에서 선택하라고 했었죠. 난 렌치를 선택했어요. 할 때까지 해보란 심정이었죠.”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윌은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얼떨결에 과거 이야기를 꺼냈는데 상상 이상의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수치심이 몰려오니 본능적으로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노련한 치료자인 숀교수는 윌에게 다가가면서 다음과 같이 부드럽게 속삭인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무슨 소리야?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며) 네. 알아요.”
“얘야, 잠깐 날 똑바로 바라볼래.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시시껄렁하다는 표정으로) 안다니까요.”
“네 잘못이 아니야.”
“(이번에는 치료자를 노려보면서) 글쎄 안다니까.”
“아냐. 넌 몰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알아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좋아요. 알았어요. (이제 그만 해요. 괴로워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고개를 숙이고 침묵, 일촉즉발의 상황)”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울먹이며) 제발 성질나게 하지 말아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치료자를 강하게 밀쳐내며) 성질나게 하지 말란 말이에요.
선생님만이라도.”
“네 잘못이 아니었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흐느끼기 시작)”
“(부드럽게 주인공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 잘못이 아니었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오열하다가 치료자를 부둥켜안는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가만히 끌어안아 준다.)”


숀 교수는 윌에게 무려 10번이나 네 잘못이 아니라고 반복해서 말한다. 왜 숀 교수는 한 두 번만 말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뻔한 말을 굳이 열 번이나 반복해서 말을 했을까? 어린 자신이 양부모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당한 것에 대한 수치심, 그리고 엄마 혹은 동생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수치심을 윌은 오랜 시간 동안 가슴에 품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 당시 어린 윌로서는 폭력적인 양아버지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 폭력 사건의 잘못은 분명 양아버지에게 있다. 혹은 어린 윌을 끌어안고 집에서 도망쳐 나오지 못한 엄마에게 있다. 그런데 윌은 그 당시에 일어난 모든 사건에 대한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아니 그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 부끄러움은 강렬한 신체의 반응이다. 부끄러움은 누군가의 비난과 공격에 대한 자연적인 방어기제로 거의 얼어붙는(freezing) 것과 유사한 신체의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강렬한 부끄러움에 압도되면 당사자의 전전두엽은 완전히 기능이 마비된다. 전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보면 치료자인 숀 교수가 2번 정도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했을 때, 주인공 윌은 “그래요, 알아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러나 머리로는 알고 있을지언정 윌이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숀 교수는 직관적으로 알아채고 있었다. 그래서 숀 교수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따뜻한 위로의 말에 마침내 윌의 방어벽은 무너져내리는 순간, 오랜 세월 억눌려 왔던 강렬한 수치심과 분노의 감정이 표출된다. 진정한 수치심의 치유는 관계의 연결감(connectedness) 속에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PS. 실제로 수치심 치유가 2, 3분 사이에 드라마틱하게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치심을 꺼내 놓아도 괜찮을 만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연결감이 생기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걸 빨리 건너뛸 지름길, fast track은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