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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사람이 빛으로 하나되는
밝은 세상을 꿈꾸다
글. 한국전기연구원 전력정책연구센터 이창호 박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생에너지는 다른 나라의 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굳건하게 유지되던 우리나라 전력산업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전력 산업을 지탱해 오던 원전, 석탄 발전이 해체되고 있다. 초고압 송전망에 의존하던 전력 시스템도 더 이상 확충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력 산업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IRENA 전망치에 따르면 앞으로 2030년까지 해마다 태양광은 140GW, 풍력은 80GW 늘어나 각각 2,037GW와 1,455GW에 이를 것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한 세대 안에 재생에너지가 전력 공급의 대부분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제 재생에너지나 분산자원을 전력 수급에 구색이나 맞추는 자투리 전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변화는 이미 전원과 공급 분야에서 시작됐다. 2010년 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년 늘어나던 전력 수요가 2015년 이후 정체 상태다. 오히려 코로나19 때문에 수요 감소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원전비중은 1990년대에 정점을 찍은 후 감소 추세로 접어들고 있다. 얼마 전 발표한 ‘제9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2034년에는 설비 비중이 9.9%까지 줄어든다고 한다. 반대로 신재생에너지는 2034년에 40%까지 설비 비중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IRENA(International Renewable Energy Agency, 국제재생에너지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된 태양·풍력 발전설비가 각각 486GW와 564GW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총 발전설비가 약 100GW이고 원전 등 대형 발전소 규모가 1GW 라면 그 규모가 대충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IRENA 전망치에 따르면 앞으로 2030년까지 해마다 태양광은 140GW, 풍력은 80GW 늘어나 각각 2,037GW 와 1,455GW에 이를 것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한 세대 안에 재생에너지가 전력 공급의 대부분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재생에너지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기간을 감안하다면 전력 공급 구조와 방식에 실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앞으로 수요 많아질 분산자원

이러한 전력 산업 환경 변화는 필연적으로 분산자원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정부는 에너지 기본 계획과 ‘전력수급기본계획’, 온실가스 감축목표 등 국가 에너지 정책을 통해 분산자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2014년 수립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현재 5% 수준인 분산형 전원의 비중을 2035년에는 15% 이상으로 확대하며, 최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2040년까지 분산 에너지를 3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최근 들어 전력 수요 증가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수도권 등 수요 밀집 지역은 공급이 턱없이 적어 수급 불균형이 지속 될 것이다. 이를 방치한다면 송전망 등 신규 전력 설비가 필요할 테지만 대규모 발전소나 송전망 건설은 입지 및 환경 문제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분산자원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에너지의 분산화, 친환경화가 진행된다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송전망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이다. 재생에너지, 열병합 시스템 등 분산전원은 대규모 중앙 집중형 전원에 비해 환경, 에너지 효율과 전력 시스템 관점에서 우위에 있다.
특히 분산자원은 막대한 송배전 투자비용의 감소는 물론 전력 손실 감소,지역적 혼잡 완화 등 다양한 편익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보급의 큰 장애물인 설치 장소, 환경 문제, 전력망 문제가 해결된다. 또한 전기·열·가스 에너지의 통합 생산과 저장을 통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분산 편익과 환경 편익을 반영할 경우 경제성도 나아질 것이다.
전원(또는 발전설비) 선택의 기준은 경제성 중심에서 환경성, 사회적 수용성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직접비용만을 반영했으나 이제는 환경, 보상, 갈등, 정책, 폐지 비용 등 사회적 비용 또는 외부 비용이 내부화되는 추세다. 원전 발전, 석탄 발전은 싸고 재생에너지, 분산자원은 비싸다는 고정관념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거나 안정화되고 있다.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단가는 이미 많이 떨어졌다. 일부 국가에서는 기존 발전 단가보다 낮다. 다만 기후에 민감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공급과 전력 품질 유지 를 위해 예비력이나 보완 설비, 나아가 전력 계통의 보강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빠르게 변화하는 전력 산업의 미래를 대비할 때다. 변화는 한편으로 망설여지지만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선진국의 전력 산업은 이미 1980년대 이후 정체 상태에 접어들었지만 2000년 이후 재생에너지 확산에 힘입어 에너지 산업이 다시 성장하고 있다.

전력 산업, 공급자 중심에서 프로슈머의 시대로

전력과 에너지 산업은 바야흐로 프로슈머(Prosumer, 소비자가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방식)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력회사(생산자)가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망을 건설하여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공급자 중심’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에서는 더 이상 이런 방식에 의존하기 힘들다. 아울러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공급할 수 있는 기술적·경제적 토대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머지않아 소비자가 전력을 스스로 충당하거나 남은 전력을 다른 곳에 파는 일도 생길 것이다. 태양광, 풍력, 바이오 수소 연료 전지 저장 시스템, 전기자동차, 스마트 그리드의 등장으로 프로슈머 시대로 가는 장애물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정책과 지원제도 또한 빠르게 마련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이제는 빠르게 변화하는 전력 산업의 미래를 대비할 때다. 이미 우리는 2010년 이후 ‘발전차액지원제도’,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 Renewable Energy Portfolio Standard)’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공급과 운영 경험을 축적해왔다. 변화는 한편으로 망설여 지지만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선진국의 전력 산업은 이미 1980년대 이후 정체 상태에 접어들었다. 설비는 남아 돌고 수요는 포화 상태였지만 2000년 이후 재생 에너지 확산에 힘입어 에너지산업이 다시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시기만 다를 뿐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전력산업 생태계의 기술, 자원, 비지 니즈 모델, 시장 참여 자가 훨씬 다양해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전기 제품이 개발되고, 전기차와 수소차의 혁신이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를 전기 형태로 사용하는 전력화율은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이제는 안정되고 닫힌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태계를 향해 한 발 더 다가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