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자투리 가죽에 환경적 가치를 더한 신발이 탄생했다. 재활용 소재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자원 순환을 실천하며 가치의 변화를 이끄는 기업 아나키아를 만나보자.
아나키아는 정부가 아직 하지 못한 일을
먼저 해보자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가죽은 323톤에 달한다.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의 1,000배가 넘는 가죽 쓰레기가 매립· 소각되며 2차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실정이다. 이렇게 많은 가죽이 버려지는 것은 제품 생산에 가장 높은 등급의 부위만 쓰이기 때문이다. 아나키아의 임희택 대표는 신발 업계에서 근무하는 동안 자신이 수많은 자투리 가죽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러다 참석한 자원순환 포럼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이 쓰레기 산에서 노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쓰레기 산의 엄청난 규모가 그를 더 놀라게 했다. 김 대표는 이 일을 계기로 재생가죽을 이용해 신발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나키라’라는 이름도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아나키오는 무정부주의 자라는 뜻의 아나키스트와 다른, 정부가 아직 하지 못한 일을 먼저 해보자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아나키아는 2019년 7월에 재생가죽으로 신발을 만드는 친환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가장 처음 제작한 건 밴딩이 들어간 구두였다. 환경미화원이 신고 벗기 편한 신발을 만들고자 선택한 아이템이었다. 임 대표가 어릴 적, 환경 미화원 아버지를 둔 친구가 있었다. 임 대표는 그 친구와 함께 어른이 되면 환경미화원이 되자는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가 생각하는 환경 미화원은 환경문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분들이기에 그들을 위해 가성비 높은 신발을 제작하고 싶었다.
임대표는 이렇게 좋은 취지를 담은 제품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펀딩에 참여하기로 했다. 신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부터 제작 단계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펀딩에 성공한다면 이 프로젝트에 든든한 지지자가 생기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높아진 의식 수준 덕에 아나키아는 결국 펀딩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3,000%가 넘는 매출을 달성하기까지 했다.
아나키아는 창업 후 2년에 걸쳐 5,850개 신발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소 585마리에 해당하는 가죽 2만6,325평을 보존할 수 있었다. 가죽 원단을 얻기 위해서는 소가 필요하고, 그 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물과 녹지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따져보면 결과적으로 물 97톤에 이어 화학약품 2.9톤까지 절약한 셈이다. 아나키아는 지난해 환경부가 인정한 환경형 예비 사회적기업이 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 페트병 분리수거 게임을 하는 참가자들
▲ 필리핀 아이들이 기존에 신던 신발
아나키아가 진행한 업사이클 젠가, 업사이클 올림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은 자원 순환의 가치를 체득했다.
아나키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업사이클링 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업사 이클링이란 버려지는 제품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더해 전혀 다른 제품으로 재생산하는 것을 뜻한다. 임 대표는 먼저 업사이클 젠가 대전을 열었다. 폐목재를 활용해 젠가를 만들어 순환적 가치에 대 해 생각해보게 하는 놀이교육이다. 성동구 기준으로 하루 평균 1.6톤의 폐목재가 발생하는데, 이런 환경 이슈를 알리고 놀이를 통해 업사이클의 가치를 전달했다.
업사이클 올림픽도 진행했다. 페트병 분리수거를 스포츠 종목처럼 다루며 올바른 분리수거법을 알아가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참가자들이 업사이클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 필리핀 아이들에게 신발을 나눠주고 있는 임희택 대표
▲ 폐목재를 활용한 젠가로 게임을 하는 참가자들
이처럼 직접 업사이클을 체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임 대표는 아나키아 초창기 시절 300명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합성피혁과 재생 가죽을 비교하는 실험이었다. 소재에 대해 밝히기 전에는 재생 가죽을 선호하던 사람들도 소재를 밝히고 나면 합성피혁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재활용 가죽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아나키아가 사용하는 재생 가죽은 일반적으로 가죽제품을 생산할 때 쓰는 최상급 부위를 제 외한 주변 가죽이거나 작은 조각들을 파쇄해 새롭게 만든 재활용 가죽이다. 전혀 문제가 없는 소재인데도 사람들의 오해로 재생 가죽이 외면 당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임 대표는 말했다. 업사이클링 체험활동을 아나키아 제품 마케팅의 일환으로 곡해하는 시선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했다면 이런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교육 프로그램의 주 대상이 청소년인 이유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라고 임 대표는 덧붙였다. 훗날을 위해 업사이클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은 아나키아의 여러 목표 가운데 하나다.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김대표는 펀딩을 통해 받은 관심과 응원을 필리핀 아이들에게 나누기도 했다. 그가 마닐라의 한 대학교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것이 계기였다. 마닐라 외곽이나 빈민가 주변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녔던 임 대표는 아이들이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심지어 신발이 없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가 신발을 들고 직접 필리핀을 방문한 덕에 이제는 30명 가까운 아이들이 새 신발을 신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됐다.
임 대표의 최종 목표는 아나키아를 친환경 워커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좋은 가치를 담은 제품을 합리적으로 거래하는 글로벌 회사로 거듭날 아나키아의 미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