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과 당진은 산과 바다, 평야를 모두 품고 있어 다양한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여행지다. 낭만적 감성에 젖어 들고 싶다면 바닷가에서 해돋이·해넘이를 보자. 자연 속 오랜 역사의 흔적을 만나고 싶다면 사적공원인 조선시대 읍성이나 휴양림 지구 안에 있는 백제시대 불상을 찾아가도 좋다.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간척지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농산물과 서해안에서 잡은 신선한 회가 당신을 기다린다.
자연을 만나다 해안선 따라 떠나는 소항구 여행
아침 7시 40분, 동쪽 하늘에 노을처럼 붉은 기운이 가득하다. 늦을 새라 서둘러 주차를 하고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어느덧 해안가 건너 언덕 위로 붉고 동그란 해가 손에 잡힐 듯 떠올랐다. ‘우와~’ 하는 탄성소리가 절로 나온다. 충남 당진 왜목마을 일출 광경이다. 바다와 언덕, 마침 살짝 낀 구름으로 일출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과연 일출 명소다.
큰 기대 없이 떠나온 길이었다. 일출을 많이 찍어온 사진작가는 “왜목마을 일출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기는 2월과 10월”이라고 했다. 이때가 되면 노적봉과 장고항 언덕 사이, 삐죽하게 솟은 촛대바위 위로 해가 뜬다. 해는 촛대를 밝히는 불꽃이 되어 신비하고 오묘한 장면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해 뜨는 위치는 장고항 용무치와 경기도 화성군 국화도 사이다. 동지와 하지를 기준으로 바뀌나, 방향과 상관없이 해가 뜰 때의 아름다움은 변치 않는다. 동해 일출처럼 웅장한 맛은 없지만 서해 일출만의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인 매력이 있다.
왜목마을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이곳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지도에서 보면 왜목마을은 북쪽으로 불쑥 튀어 나와 있다. 이 부분의 해안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동해안과 같은 일출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일출 뿐 아니라 일몰, 달맞이, 별자리를 모두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지형적인 이야기는 ‘왜목’이라는 마을의 유래와도 관련이 있다. ‘왜목’은 마을 지형이 왜가리 목처럼 가늘고 길게 뻗어 나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배를 타고 바다 쪽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야트막한 산과 산 사이가 움푹 들어가 가늘게 이어져있다. 땅 모양이 마치 누워있는 사람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해서 ‘와목(臥木)’으로 부르던 것이, ‘왜목’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제는 비상하는 왜가리를 본 뜬 조형물 ‘새빛왜목’이 바닷가에 자리 잡았으니, 어찌됐든 지금은 왜가리 목 이야기가 더 힘을 얻는 듯하다.
2018년 12월 설치된 이 조형물은 가로 9.5m, 너비 6.6m, 높이 30m 규모로 스테인리스 스틸 강판으로 만들어졌다. 보는 방향에 따라 빛이 반사되는 각도가 달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국내 해상 조형물 중 최대 규모로 포항 호미곶 상생의 손(8.5m)보다 3.5배가량 높다고 한다. 해가 뜰 때는 햇빛이 반사되어 찬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야간에는 조형물 위쪽으로 설치된 LED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새빛왜목 앞에는 왜가리 날개 모양의 의자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일종의 포토존이다. 의자에 앉아 양손을 벌리면 왜가리가 날아가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고 한다. 인증샷을 위해서라면 그 앞에 설치된 동그란 기둥인 사진 포인트(photo point)를 찾아보자. 해돋이를 보기 위해 새벽 길을 달려온 피로가 달아날 만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해넘이를 보고 싶다면 인근 석문산으로 가야 한다. 다행히 산이 높지 않아 힘 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 해마다 12월 31일이면 이곳에서 ‘해넘이 해맞이 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작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다. 다만, 올해 설(2월 12일)쯤 방문하면 촛대바위 위로 해가 뜨는 장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서산 9경 중 하나이기도 한 선상어시장
▲ 정박된 배들이 모여 어시장을 이루었다
▲ 배에서는 즉석에서 활어회를 떠서 판다
▲ 선상어시장에서 구입한 회는 인근 식당에서 매운탕과 함께 먹을 수 있다
왜목마을에서 삼길포까지는 대호방조제 위 직선거리를 이루는 38번 국도를 거치면, 약 15분정도 걸린다. 방조제를 건너면 당진에서 서산으로 넘어가는데, 만일 방조제가 없었다면 해안선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 길은 매우 훌륭한 드라이브 코스다. 한쪽은 바다, 또 다른 한쪽은 대호만이기 때문에 늦가을이면 떼를 지어 다니는 철새들의 비행을 볼 수 있다. 삼길포항 주변의 난지도, 소난지도, 비경도, 대조도, 소조도, 도비도 등도 돌아 볼 수 있다. 유람선이 운행돼 주말이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당진과 서산에는 작은 항구가 많아서 어디서든 신선한 제철 회를 먹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삼길포를 선택한 것은 ‘선상어시장’이라는 독특한 시장 때문이다. 삼길포 해안가를 지나다 보면, 작은 배 위에 배 이름을 적은 노란색 깃발이 나부끼는 게 보인다. 각각의 배가 고기를 잡는 동시에 고기를 파는 상점인 셈이다.
서산 9경 중 하나이기도 한 선상어시장 ‘회 뜨는 선상’에서는 바다 위에 부교를 만들어 배를 정박시키고 즉석에서 활어회를 떠서 판다. 광어, 우럭, 노래미, 도다리, 간재미, 낙지 등 서해바다에서 나는 각종 생선을 다룬다. 특히 우럭이 유명한데, 8월이면 전국 유일의 우럭 축제가 열려 우럭 시식 및 우럭 맨손 잡기 체험 등 행사도 열린다.
고깃배로 잡은 현지 해산물을 직접 팔기 때문에 아무래도 가격이 저렴하다. 특히 이곳 어시장의 상인들이 파는 해산물의 가격은 모두 비슷하다. 분란과 출혈 경쟁을 막기 위해 어민끼리 가격을 합의했다고 한다. 가격은 한 마리 당 15,000원~30,000원 정도이다. 우럭과 도다리 두 마리를 35,000원에 구입했더니 네 명이 먹어도 좋을 만큼 많은 양이 나왔다.
이곳 상인에 따르면 선상어시장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형성됐다고 한다. 이곳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은 모두 이 마을에 오래 살아오며 어업에 종사해 온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29척이 영업했지만, 점차 선주들의 건강이 악화되거나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는 22척이 영업중이다. 움직이는 배가 상점이다 보니 자리 선정은 꽤 공정하며 유동적이다. 매일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자리를 바꾼다. 오늘은 끝자리라 손님을 덜 맞이했다면 내일은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곳에서는 회를 먹을 수 없고 인근 식당에 가져가야 한다. 1인당 6,000원을 내면 매운탕을 포함해 밥과 밑반찬, 초장, 된장 등이 제공된다. 회와 매운탕 거리를 들고 인근 ‘바다식당’에 자리 잡았다. 주인은 “이제 막 밥을 해서 맛있다”면서, “아버지가 직접 농사 지은 서산해풍 쌀”이라고 자랑했다. 쫄깃한 회와 시원한 해물탕, 거기에 갓 지은 밥, 어느 하나 허술하지 않았던 밑반찬까지…. 체면 차리지 않고 허겁지겁 먹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역사를 만나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간 여행
▲ 백제 후기 무화유산인 국보 제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 조선시대 지방관서에서 정무를 보던 해미읍성의 중심 건물인 동헌
서해안고속도로 서산IC로 나와 좁고 길게 뻗어 있는 용장천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 같은 풍경을 가진 고풍 저수지를 만난다. 농업용수를 위해 조성한 저수지지만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비밀스러운 유럽 휴양지 분위기가 난다. 이곳 바로 옆에는 가야산 줄기에서 이어지는 용현계곡과 용현자연
휴양림이 있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서산마애불로 불리는, 백제 후기 문화유산인 국보 제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있어서다.
휴양림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용현집 맞은 편에 나무 데크로 조성된 길이 나타난다. 계단을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관리사무실과 ‘불이문’이 나온다. 이 문으로 들어서면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그 끝은 깎아지른 절벽, 커다란 바위 아래 새겨진 세 개의 불상이 있다. 2.8미터에 이르는 불상은 중앙에 석가여래 입상을 기준으로, 왼쪽은 제화갈라보살 입상,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이 조각돼 있다. 석가여래 입상은 현재를, 제화갈라보살 입상은 과거를, 미륵반가사유상은 미래를 의미한다. ‘마애불’이란 자연 암벽이나 바위를 파고 들어가 양각으로 조각한 불상이다. 기원전 2세기~3세기 무렵 인도에서 제작하기 시작해 4세기 중엽 중국을 거쳐 7세기 전후에 백제 문화권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진다. 삼존불(불상 3개)은 6세기~7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보편적 형식이다.
그러나 보주를 들고 있는 입상 보살과 반가보살이 함께 새겨진 것은 중국이나 일본, 고구려, 신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또한 마애여래삼존상은 당시 중국과 백제의 문화 교류의 흔적으로 볼 수 있어서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불상은 널리 알려진 대로 인자하고 따뜻한 ‘백제의 미소’가 일품이다. 빛의 방향,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고요한 숲 속에서 불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풍부한 표정에 몰입돼,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착각마저 든다.
▲ 해미읍성은 보존상태가 좋은 조선시대 읍성이다
▲ 맑은 날, 청허정에 서면 서해가 보인다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는 용현리에서 차로 20분 정도 달리면 매끈하게 쌓아올린 긴 성벽을 만나게 된다. 전북 고창 읍성과 함께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조선시대 읍성인 해미 읍성이다. 해미읍성은 사적 제116호이자 서산 9경 중 으뜸으로 친다. 지금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예전에는 성의 둘레에 탱자나무를 돌려 심었기 때문에 탱자성이라고도 했단다.
읍성은 대개 지방 관청과 사람들이 사는 곳을 둘러싼 성을 뜻하나, 이곳은 병영성으로 서해안 방어의 군사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선조 12년 이순신 장군이 10개월간 군관으로 근무한 곳이기도 하다.
성은 높이 5m, 둘레 1,8km의 성벽으로 되어있으며 동, 남, 서의 세 문루가 있으나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크게 훼손됐다. 현재 동헌, 관아문, 책실, 객실, 동헌부속사, 청허정, 동문, 서문, 남문, 포루 2동 등 11동 관아 건물이 복원됐지만 여전히 공터가 더 많다.
건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피로 물든 역사가 여기저기 남아있다. 조선시대 역사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대 천주교 순교 성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는 1,000여 명이 이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2014년 내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면서 해미읍성의 역사가 전세계로 보도됐다.
성내는 약 20만 제곱미터(m²) 규모이다. 공원처럼 잔디밭이 펼쳐져 산책하기 좋다. 비교적 잘 보존된 진남문을 통과하면 동헌까지 이어지는 길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 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전통 찻집과 음식점이 전통 가옥 형태로 들어서 있고, 오른쪽에는 당시 사용됐던 조선시대 무기가 전시돼 있다.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회화나무다. 천주교 신자를 나뭇가지에 매달아 처형했던 나무로, 당시 처형과 고문에 쓰였던 철사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옥사에는 천주교인을 가두던 감옥과 형틀을 당시 모습대로 재현해 놓았다. 민속 가옥도 들어서 있다. 모두 초가집이나 당시 신분대로 나눠서 꾸며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관아로 쓰였던 동헌과 출장 온 관리가 사용했던 객사가 복원돼 있으며, 그 뒤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가면 맑은 날에는 서해 바다까지 바라볼 수 있는 정자인 청허정이 서 있다.
해미읍성의 야경은 한국관광공사의 야간 관광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취소됐으나 매해 10월이면 조선시대의 생활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 축제인 서산해미읍성축제가 열린다. 올해 600주년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