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네이쳐
글,사진 김용규
여름에 피는 꽃들로부터 치열함의 미학을 배우다
나는 강연을 할 때 가끔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꽃구경을 가는 계절은 주로 언제지요?” 청중 대다수의 대답은 단연 ‘봄’이다. 뒤이어 물어본다. “그럼 사계절 중 꽃이 가장 많이 피는 계절은 언제일까요? ” 당신의 대답이 궁금하다. 청중 대다수는 역시 ‘봄’이라고 대답한다. 틀렸다. 숲을 면밀히 관찰하고 자세한 사진을 찍고 감각적인 글을 써서 식물도감을 만든 어떤 이가 밝히고 있는 답은 ‘여름’이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봄에 피는 꽃은 전체 꽃 중 15%에 불과하고 여름에 피는 꽃이 무려 50%에 달한다. 나머지 계절에 35% 정도가 핀다고 한다.
그의 관찰 기록에 근거하여 나는 이렇게 묻는다.
왜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상대적으로 봄꽃이 제일 적고 여름꽃이 가장 많은 것일까? 나는 그 답을 이전 호에 담은 ‘대극(對極)의 원리’로 설명한다. 우주만물의 구성과 운행의 원리가 그러하듯 봄에 피는 꽃 역시 대극의 원리에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즉 봄꽃이 누리는 ‘빛’이 있다면 봄꽃이 감당하고 넘어서야 하는 ‘그림자’가 있다는 말이다. 그들의 ‘빛’은 한마디로 ‘단독성’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숲에서 진달래를 본 기억이 있는가? 어떠한가? 주변에 파묻히는가, 확연히 드러나는가? 주변은 아직 암회색 혹은 암갈색 빛, 그 분홍빛 진달래의 개화는 주변을 모두 사라지게 한다. 단박에 그 꽃이 온 시선을 사로잡는다. 진달래만이 아니다. 생강나무며 산수유며 매화며 개나리며 모든 이른 봄꽃은 피었다 하면 시선을 이끈다. 사람이든 곤충이든 시선을 사로잡는 데는 그 대상에 가림이 없다. 그 시절 온 생명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나무의 꽃만이 아니다. 숲의 바닥에 피는 자그마한 풀꽃들도 마찬가지다. 얼음새꽃(복수초, 순우리말 얼음새꽃이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의 복수초로 도감에 기록되는 비극을 겪었다.)이며 노루귀꽃이며 처녀치마며 앉은부채며 바람꽃이며…. 그시절의 풀꽃들은 때 이른 곤충을 색으로, 향기로 불러 꽃가루받이를 한다. 그 중 앉은부채나 얼음새꽃은 꽃잎 안쪽의 온도를 바깥 기온보다 높게 만들어 곤충을 유혹하기도 한다.
한편 봄꽃이 감당해야 하는 ‘그림자’ 혹은 ‘숙제’는 무엇일까? 가장 큰 그것은 ‘늦추위’이다. 모든 계절과 계절의 연결이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분명하게 찾아들지 않는다. 겨울로부터 찾아오는 봄이라는 계절 역시 그렇다. 낮의 기온은 따사로워 봄이라 하더라도 한 밤의 그것은 여전히 영하인 겨울과 같은 날들이 긴 몇 날을 반복하면서 어느 순간 완연한
봄이 온다. 내가 사는 충북 괴산에는 4월 초에도 눈이 내리고 뒷산에 상고대가 피어나는 해가 여전히 왕왕 있다. 봄에 피는 꽃의 자리는 그 밤추위, 혹은 늦추위가 주는 그림자를 운명으로 끌어안고(적응하고) 잘 이겨낸 생명들의 차지인 것이다.
자, 이제 여름꽃의 ‘빛과 그림자’를 헤아려볼 차례이다. 왜 여름에 피는 꽃이 가장 많을까? 그것은 그들이 누리는 ‘빛’ 때문이다. 여름꽃이 누리는 빛은 한마디로 ‘안전함’이다. 여름꽃은 안전하다. 일조량이 가장 길고, 온도가 가장 따뜻하며, 강우량과 매개 곤충이 가장 많은 때가 언제인가? 두말할 나위 없이 여름이다. 꽃들에게 여름은 가장 안전한 계절이다. 그렇다면 안전함을 누리는 여름꽃들이 감당해야 할 운명적 ‘그림자’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치열함’이다. 봄의 색은 파스텔 톤 혹은 연둣빛이다. 여름이 되면 이제 숲은 녹음으로 변한다. 여름의 색은 점점 짙어지고 마침내 암록색으로 변한다. 뽑아 올릴 수 있는 이파리와 가지와 줄기의 최대치가 이때 절정을 이룬다. 여름에 피는 꽃들은 녹음 속에서, 그 무한 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그림자요, 숙제다.
여름꽃들은 어떻게 그 치열함을 뚫고 자신의 꽃을 열매로 바꾸어낼까? 여름꽃들에게는 치열함의 미학이 있다. 내가 보기에 그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색(色)으로 승부를 내는 전략이다. 여름 입구에 피는 이팝나무, 이후 나리꽃, 원추리, 누리장나무 같은 꽃들은 녹음과 대비를 이루는 선명한 꽃색으로 승부를 낸다. 다음으로 향(香)의 계책을 쓰는 꽃들이 있다. 여름 입구의 아카시꽃, 밤꽃, 그리고 피나무, 칡덩굴의 꽃들이 그러하다. 그들의 짙은 향을 꼭 맡아보기 바란다! 셋째, 형태를 바꾸는 전략이다. 산딸나무의 꽃과 열매를 본 적이 있는가? 그 꽃은 연두색, 여름의 초록은 연두를 묻는다. 산딸나무는 잎을 꽃 모양으로 변형했다. 변형된 하얀색의 잎이 꽃받침 노릇을 하며 곤충을 유혹한다. 백당나무나 산수국을 아는가? 그들 역시 진짜 꽃은 좁쌀만큼 작은 크기이다. 가장자리에 흰 빛의 커다란 헛꽃을 피워 곤충을 부르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시간의 분할 혹은 통합을 노리는 전략이다. 대부분의 꽃이 한낮에 필 때, 분꽃과 달맞이꽃은 저녁을 겨냥하여 피어난다. 밤에 움직이는 나방류는 낮에 움직이는 곤충의 네 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들은 밤을 선택하여 개화함으로써 치열함을 회피했다. 저녁과 달리 달개비꽃은 새벽을 겨냥하여 한낮의 치열함을 이기고 있는 꽃이다. 한편 배롱나무나 무궁화는 피고지고 또 피어나며 여름날의 많은 곤충을 긴긴 시간 부를 줄 아는 꽃이다. 여름이 다 가고 있다. 치열함 속에서 자기의 그림자를 견디며 숙제를 풀어낸 모든 존재들은 이제 아름다운 결실을 맛볼 것이다. 치열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여름 숲은 치열함의 미학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