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곁에 머무르는 명화
명화로 읽는 셰익스피어 문학
영국의 16세기를 빛낸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인도를 다 준다 해도 셰익스피어와 바꾸지 않겠다’라고 한 것은 그의 문학적 가치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당대에 반짝한 철학자나 문학가는 많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빛을 더 발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4대 비극으로 불리는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등 37편에 달하는 그의 희곡은 때로는 책으로, 때로는 무대에서 세상을 울리고 웃겼다. 지금부터 그가 만든 문학의 무대를 명화로 만나보자.
살바도르 달리의 격찬으로 유명해진 <오필리아>
OPHELIA 1851~1852 By John Everett Millais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손에 꽃을 꺾어 들고 강물 위에 떠서 죽음을 맞고 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덴마크의 왕이 갑자기 죽자 왕비 거트루드는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와 재혼하고, 클로디어스는 새로운 왕이 된다. 햄릿왕자는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클로디어스라는 사실을 알고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햄릿은 재상인 폴로니우스를 왕으로 오해해 칼로 찔러 죽이게 되고, 햄릿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자 폴로니우스의 딸인 오필리아는 이 소식을 듣고 강물에 빠져 죽게 된다는 것이 그림의 배경이다. <오필리아>는 비극적인 죽음을 주제로 그렸지만,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표정에서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버드나무가 비스듬히 서 있는 시냇가. 하얀 잎새가 거울 같은 물 위에 비치고 있는 곳이란다. 그 애(오필리아)가 그곳으로 미나리아재비, 쐐기풀, 실국화, 연자주색 난초 따위를 엮은 화관을 쓰고 와서 늘어진 버들가지에 올라가 그 화관을 걸려고 했을 때, 심술궂은 은빛 가지가 갑자기 부러져서 오필리아는 화관과 함께 시냇물 속에 빠지고 말았어. 그러자 옷자락이 물 위에 활짝 펴져 인어처럼 잠시 수면에 떠 있었다는구나. 오필리아는 마치 인어처럼 늘 부르던 찬송가를 부르더래. 마치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처럼···.”
- <햄릿> 4막 7장 中 오필리아의 죽음을 전하는 왕비
20세기의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소개로 <오필리아>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달리는 “존재 자체가 충격적인 빛나는 여인을 우리에게 선사했다”라며 극찬했다. <오필리아>는 1851년 12월 화상에게 300기니(파운드 이전 영국 화폐)에 팔렸다. 1862년에는 748기니로 거래됐고, 이후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게 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오필리아>의 가치가 최소 3000만 파운드(약 45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 거래될 가능성은 없지만, 워낙 유명한 그림이다 보니 경매에 나온다면 추정가를 뛰어넘는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 없는 세계를 거부하는 연인들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1884 By Frank Dicksee
사랑 없는 세계를 거부하는 연인들 <로미오와 줄리엣>
베로나의 명문 몬태규 집안과 캐풀렛 집안은 오랜 원수지간이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으로 몬태규 집안의 아들 로미오와 캐풀렛 집안의 딸 줄리엣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이들은 로렌스 신부의 주선으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에 로미오는 줄리엣의 사촌인 티볼트가 싸움을 걸어오자 그를 찔러 죽이고 만다. 로미오는 추방선고를 받게 되어 단 하룻밤만을 줄리엣의 방에서 지새우고 떠난다. 프랭크 딕시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로미오가 떠나기 전, 신혼 첫날밤을 보낸 두 연인이 안타까운 이별의 입맞춤을 나누는 장면이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조금은 불안정한 자세로 키스를 나누는 어린 연인의 모습은 너무나도 애틋하다. 앳되고 순수해 보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묘사에서 그들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배경의 아치형 구도나 건물의 양식, 고대 로마식으로 장식된 대리석 기둥 등에는 화가의 취향이 담겨있고 초목의 생생한 묘사에서는 자연주의적 세부묘사가 돋보인다. 그녀는 로미오가 추방 당한 뒤 다른 남자와 결혼하길 강요당하지만, 순결을 지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숨이 멎는 약까지 마신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나이는 당시 14세였다고 한다. 어두운 달밤과 위태로운 자세가 이들의 불운한 운명을 예고하고 있는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비록 비극적인 결말을 낳았다 하더라도 이들의 사랑은 수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요정이 벌인 사랑의 장난 <한여름밤의 꿈>
HERMIA AND LYSANDER FROM A MIDSUMMER NIGHT'S DREAM 1870 By John Simmons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사랑하는 사이다. 그러나 허미아에게는 아버지가 짝지어 준 드미트리우스가 있다. 허미아는 진실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라이샌더와 숲으로 사랑의 도피를 한다. 드미트리우스가 그 뒤를 쫓고 드미트리우스를 사랑하는 헬레나가 다시 뒤를 쫓는다. 이를 지켜보던 숲의 왕 오베론은 네 명의 사랑을 이루어주려고 하지만, 시종 퍼크의 실수로 허미아의 연인인 라이샌더가 묘약의 마법에 걸려 헬레나를 사랑하게 되고, 허미아를 추격해 온 드미트리우스까지 옛 연인 헬레나를 사랑하게 된다. 얽히고설킨 사랑의 화살표 속에서 한바탕 숲속에서 소동이 벌어진다. 오베론 왕은 시종 퍼크에게 다시 관계를 정리해 주라고 명하고 마침내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다시 사랑을 확인하고 드미트리우스는 헬레나를 선택한다. 모든 소동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가고 커플들은 결혼식을 치르며 퍼레이드와 무도회를 벌인다. 그 밤에 사랑이 춤추고 요정들도 춤춘다. 밤의 공기마저 사랑의 열기에 흔들린다. 존 시몬스의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한 여름밤에 숲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주인공을 그린 그림이다. 한여름 밤이란 낮이 가장 긴 하지 무렵의 성요한제 전야라고 한다. 영국 사람들에게는 이날 밤에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미신이 있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와 성 요한제 전야의 미신을 결합해 환상적이고 동화 같은 러브스토리를 창작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