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츠러브캠페인 _나선미 작가

우리는 왜, 사랑을 반복하는가
내 청춘이 봄이라면 엄마는 자연이었다

엄마와 딸 사이는 간단한 관계가 아니다. 미워하고 사랑하고, 창피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아픈 곳을 할퀴고 그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노력한다. 기쁨이면서 슬픔이고 아픔인 동시에 희망인 엄마와 딸의 관계를 나선미 작가의 따뜻한 시선으로 만나보자.

원래 사랑하는 사이는 아픈 거예요
계절을 맞이하는 자연의 자세는 의연한듯싶다가도 예기치 못한 사이에 돌연 다른 성질을 내비치기 마련이다. 내 청춘의 나날에는 개화의 고통과 낙화의 공포가 있었다. 아름다워야 한다는 세상과 상반된, 그저 대가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준 자연 위에 살아가노라면, 들키고 싶은 순간과 숨기고 싶은 순간이 동시에 찾아오는 지극히 모순적인 삶이 되기도 했다. 이를테면 고통과 공포 속에서 친구와 엄마를 대하는 나의 태도일 것이다. 친구에게는 내 모든 속사정을 말할 수 있었다. 아니, 내심 들키고 싶었다. 친구는 날 위해 있는 그대로를 슬퍼하고 고민해주며 이따금 낭만적인 건배를 함께해주지만, 반대로 엄마라는 사람은 때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쉽게 오해하곤 했다. 그래서 엄마에겐 늘 숨기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언젠가 엄마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부러 탁상 위에 일기장을 내놓기도 했었지만, 청년전기를 겪으며 자의로 인해 엄마와의 소통의문이 좁아졌다. 그러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제아무리 혼잣말한들 알아주지 않던 엄마가 당시부터 먼저 관심을 건네기 시작한 것이다. 딸에게 엄마가 필요할 땐 그다지도 바쁘더니, 딸이 바빠지기 시작하니 찾아오는 엄마의 심보는 무어란 말인가? 원망까지는 아니지만, 서운함이 있었더랬다. 그러나 엄마가 나를 오해하듯 나도 엄마를 오해했을지 모르겠다. 그때 나를 서운캐한 엄마의 모습을, 멀리 집을 떠나온 지금에서야 조금씩 알 것도 같으니까. 아마도 그녀는, 문득 커버려 매일 집 밖에서 하루를 다 보내고 오는 딸이 궁금했으리라. 시시콜콜 떠들던 해맑음이 세상에 나가 울적함이 되어버렸으니, 무척이나 걱정됐으리라. 사실은 그 시절 엄마가 하는 걱정을 나는 참 좋아했다. 그런데 늘 모른 척을 했다. 그건 구차한 복수심일 수도 있고 어릿한 부끄러움일 수도 있다.

세상에 온 첫날부터 내곁에 있었던 엄마
오늘날 나는 수화기 너머 엄마의 걱정 어린 목소리 앞에서 늘 괜찮은 척을 하게된다. 척이 아닌 진실 그대로의 모습은 엄마의 속을 태울 뿐이기에. 엄마는 매번 나의 별 볼 일 없는 사정까지 떠안아 몸소 감당하려 하기에. 세상의 모든 딸은 대체로 엄마가 안심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할 것이다. 독립한 지 2년 정도가 되면 엄마가 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엄마의 김치가 그리워서 눈물이 다 난다. 엄마가 손으로 찢어 밥숟가락 위에 얹어주는 그 김치. 그 한결같은 애정이 사무치는 저녁이 종종 찾아온다. 그러니까, 친구는 나를 바꿀 수도 나를 떠날 수도 있는 세상이라면, 엄마는 늘 그 자리에 굳건한 자연인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는, 그래도 언제나 나의 편. 나의 엄마인 것이다. 스무 살 넘어 언젠가 엄마에게 ‘쉰 살이 되어도 넘어야 할 것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가 이내 무심한 표정으로 답했다. ‘좀 낫지.’라고. 나는 그 뚜렷한 세 글자가 왜인지 더듬더듬 들려왔다. 엄마도 겪었을 청춘의 나날. 세월이 쓰기에 소주가 달다던 엄마가 가여운 밤이다.

글 나선미 작가
마침표를 찍지 않아도 맺어지는 말들로 일상의 소중함을 적는 나선미 작가. ‘네가 어떤 딸인데 그러니’라는 시로 네티즌에게 많은 찬사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너를 모르는 너에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