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라피 _김준기
마음과 마음 신경정신과 원장
사진출처_네이버영화

따뜻하고 아름다운 트라우마 치유의 메타포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2013)

기억은 개인의 정체성을 구축한다. 기억과 개인의 인과관계는 견고해서 개인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길 때는 가장 먼저 기억을 다룬다. 문제의 원인이라고 느끼는 기억을 새롭게 상기함으로써 그 기억을 온전한 형태로 재구축하거나, 우리가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재인식하게 한다. 혹 당신도 불안정한 현재에 위태로이 서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으로 초대한다.

기억의 감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파스텔 톤의 동화 같은 영화지만,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보면 기억, 해리, 최면, 치유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단히 흥미로운 영화이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로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에 나오는 마법과도 같은 문구가 영화의 첫 장면을 장식한다. 사실 이 말은 기억의 본질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는 말이다. 마치 약국 안에 꽉 들어차 있는 약들처럼 우리의 뇌 안에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온갖 다양한 기억의 조각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을 것이다. 그중 좋은 기억의 조각(예를 들면 어린 시절 엄마가 해준 맛있는 된장찌개의 냄새, 아버지가 기분 좋을 때 흥얼거렸던 노랫소리. 보이스카우트 시절 갔었던 캠프파이어의 불빛)을 잡게 되면, 그 기억은 마치 진정제처럼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줄 수도 있고, 때로는 즐겁고 행복하게 느낄 수 있게도 해 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나쁜 기억의 조각(어린 시절 혼자서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답답함, 술 취한 아버지가 걸어올 때의 구두 발걸음 소리,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가지 않던 수학 점수, 가족 중에서 제일 못생겼다고 놀리던 오빠의 웃음소리)을 잡게 되면, 그 기억은 우리를 슬프게 불안하게 그리고 분노하게 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삶의 색깔은 어떤 기억을 어떻게 조제하여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프루스트의 문구에서 조금 걸리는 점이 있는데, 우리는 대체로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의해서 기억을 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적응적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대개는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진정제 같은 역할을 하는 기억 조각들을 주로 선택하여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려움과 불안에 가득 찬, 마치 독약과도 같은 기억 조각들은 최대한 의식 저편으로 멀리 보내어 무의식의 심연 어딘가에 아무도 모르게 저장하여야만, 그리고 그 존재조차 잊어버려야만,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기가 훨씬 쉬워진다. 즉, 우리는 본능적으로 의식에 자주 떠오르면 좋은 기억 조각, 의식에 절대로 떠오르면 안 되는 기억 조각으로 철저히 분류하고, 따로따로 저장하면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선택 조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내민 손을 통해 무작위로 기억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의도적으로 선택 조 제를 하려고 해도, 문제는 이 부정적인 기억 조각이 얌전히 있지 않고, 제멋대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비집고 나오려고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주름진 기억을 펴는 그곳, 프루스트의 정원
이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텔링 라인은 트라우마의 치유 과정을 은유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폴은 33살의 피아니스트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어버린 충격으로 폴은 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며,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지낸다.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정신적인 성장도 완전히 멈춘 듯, 그는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취급하는 두 이모의 손에 놀아나는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 두 이모가 강력하게 원하여 폴은 피아노 경연대회에 매년 나가지만, 뭔가 부족한 듯 늘 입상에 실패하고, 매일 매일 두 이모가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서 맥 빠진 피아노 연주를 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우연히도 같은 건물 4층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는 아파트 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에 신비로운 정원이 있었는데, 이 비밀의 정원은 바로 마담 프루스트의 기억치료실이었다. 이곳에서 폴은 마담 프루스트가 주는 차와 마들렌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최면 상태로 들어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빠져 있었던 기억의 파편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엄마가 자신에게 미소 짓는 기억의 파편은 폴을 웃게 만들고, 왠지 거칠어 보이고 소리만 지르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폴을 긴장시키고 진땀 나게 만든다. 그런데 재미나게도 폴이 완전히 잊고 지냈던 과거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폴은 과거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사랑했고, 또 그 두 사람이 모두 자신을 따뜻하게 사랑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왠지 마주하기 두렵고 무서워서 억눌러 놓았던 엄마 아빠에 대한 기억이었는데, 막상 떠올리고 마주 보니 그 기억들은 의외로 폴에게는 좋은 기억들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과거의 기억 조각을 더 많이 떠올릴수록 폴의 삶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사실 신기한 것은 아니다. 억눌렸던 무의식의 기억이 의식으로 나와 적응적으로 처리가 될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폴은 여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고, 악몽도 꾸지 않게 되고, 심지어 이모들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다. 사실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모들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폴 때문에 당황하고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결국,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고부터 폴이 변했다고 결론을 내린 이모들은 마담 프루스트의 방을 급습하여 그녀를 때리고 할퀴고 심지어는 내쫓아내려 한다. (사실 이는 청소년들을 치료하다 보면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주변의 눈치를 보고 위축되어 지내던 아이가 치료를 통해 조금씩 자신감을 얻고 뭔가 독립적으로 자신이 원했던 행동을 하려할 때, 의외로 많은 부모가 이를 반기지 못한다. 오히려 그 변화를 부정적인 일탈이나 반항으로 간주하고, 치료자를 비난하기도 하고 아이에게는 그전처럼 자신들의 말을 따르기를 강요한다.)
마담 프루스트가 떠나가고 혼자가 된 폴은 그녀가 주고 간 차와 마들렌을 엉겁결에 많이 먹고(과다 용량 복용) 최면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하필이면 가장 고통스러운 핵심 트라우마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겨우 2살 때 자신의 눈앞에서 웃으며 춤을 추던 엄마 아빠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게 되는 끔찍한 상황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결국, 폴은 그 기억이 담고 있었던 공포와 불안, 그리고 상실감에 완전히 압도된다. 압도적인 트라우마 기억에 너무 빨리 직면하게 되었을 때의 부작용은 때때로 만만치가 않다. 되살아난 원초적인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해, 폭음, 폭식 행동이 심해지는 것은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폴 역시 부모님의 죽음과 연관된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고 난 뒤, 이성을 잃고 충동적으로 자신의 생명과도 같이 소중한 손가락을 부러트리는 극단적인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한다.

현재를 찌르는 과거의 파편으로부터 해방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라우마 치료를 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라우마 기억을 떠올리고 버티면서 그 기억과 함께 하는 것(stay with it)이 중요하다는 믿음이 컸었다. 그러나 최근 많은 트라우마 전문가들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트라우마 기억을 떠올릴 때 옆에서 다른 누군가가(사랑하는 사람, 가족 혹은 신뢰할 수 있는 치료자) “내가 지금 함께 있어요”(stay with me) 라고 말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중요한 사람과의 연결감을 통해서야만이 트라우마 기억의 압도적인 에너지로 인해 마비된 우리 뇌의 적응적 정보 처리 시스템이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떤 세계적인 대가는 터치를 통한 연결감 없이 어떻게 트라우마가 치유될 수 있냐고까지 반문하고 있다.)
다행히도 이 영화는 따뜻하면서도 감동적인 치유의 과정을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는다. 폴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프루스트의 묘지를 찾아가 상실감에 슬퍼하지만 이내 그녀와 함께했던 기억을 통해 연결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즐겨 연주하던 우쿨렐레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드디어 폴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기를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말을 한다. 가슴 뭉클한 폴의 첫 마디는….

PS :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어. 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든, 그것은 과거의 일이고 이제 너는 거기에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영화 속에서 마담 프루스트가 폴에게 들려준 이 말을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가슴속에 간직하였으면 좋겠다.

PS : 영화 속에서 폴이 겪은 트라우마는 2살 때, 그러니까 말을 하지 못할 때 일어난 트라우마이다. 이를 pre verbal trauma 라고 한다. preverbal trauma는 놀랍게도 아기가 태아로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되어 3세까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트라우마를 말한다.

PS :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트라우마의 기억을 자꾸 덮어두려 하는 습성이 있다. 이를 해리라고 하는데 사실 이는 어쩔 수 없는 우리의 본능적인 방어기전이다. 헌데 문제는 아무리 해리시켜놓는다고 해도 트라우마의 기억이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해리시켜 덮어둘수록 트라우마 기억은 무의식의 장막 아래에서 더 은밀하고 집요하게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결정이 사실은 처리하지 않고 덮어둔 트라우마 기억의 영향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통합한다고 하는 것은 “나”라는 인간의 주체성과 전체성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