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을 찾아서
새로운 낡음, 잠든 건물을 깨우다
세계 곳곳에서 황량하고 쓸모없어진 건물이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함께 휴머니티와 지속가능성, 켜켜이 쌓인 시간의 기억이 응축되어 있는 장소를 찾아가 보자.
교도소에서 태어난 럭셔리 쉼터, 카타야노카 호텔
핀란드는 헌 건물에 창의적인 디자인을 접목한 리노베이션 건축으로 유명하다. 발전소, 공장 등 생산과 연관된 건물에서 벗어나 공공시설로 시야를 확장하여 건물을 재생하는 것이다. 1837년에 건립된 역사적인 건축물 ‘카타야노카 감옥(Katajanokka Prison)’을 호텔로 재활용한 사례가 그러하다. 175년 동안 운영되었던 카타야노카 감옥은 강도, 살인자 등 단순한 죄인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 존경받았던 사상범, 정치인들도 수감 되던 핀란드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방치된 감옥은 철조망이 녹슬고, 벽 곳곳이 무너져 건물 주변에 우중충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헬싱키 시민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건축물을짓는대신 기존 건물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호텔 기능을 더하는 리모델링 아이디어가 환영받았고, 지금의 ‘베스트 프리미어 카타야노카 호텔’이 개장하게 되었다.
짓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쓸모없는 것을 쓸모있게
안전하고 관리가 쉽도록 건설된 감옥이 106개의 객실을 가진 고급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호텔은 기존 감옥의 분위기를 가져오는 것을 원칙으로 외관은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내부 보수, 실내장식에 중점을 두어 개조했다. 호텔 입구로 들어서면 한눈에 옛 감옥의 모습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복도 양옆으로 객실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군데군데 철제 난간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천장을 통해 빛이 쏟아지는 중정과 긴 복도는 여지없이 그 옛날 감옥의 원형 그대로다. 호텔 직원들은 검정색과 흰색 스트라이프 무늬에 수인 번호가 적힌 옷을 입고 투숙객들을 맞이해 재미를 더한다. 투숙객들도 개별 요청하면 해당 죄수복을 입고 파티를 즐길 수도 있다. 독특한 재생 건축물로 사랑받는 이 공간은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어느덧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광산도시에서 예술을 캐다, 졸페라인탄광
독일 에센 지역의 졸페라인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탄광으로, 1884년 석탄 채굴을 시작해 1986년 탄광 문을 닫았다. 한때 ‘슈바르체스 골트’(검은 황금)로 불릴 만큼 석탄과 함께 호황을 누리던 에센 지역은 폐광과 함께 도시 활력을 잃었다. 그러나 정부는 탄광을 해체하는 대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으로 불리던 졸페라인을 사들여 문화 공간으로의 개조했다. 그 자체가 소중한 지역 유산이라는 생각에 2억 유로라는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원형을 유지하며 시설을 바꿔나간 것이다. 주정부의 선택은 문화 기적으로 이어졌다. 졸페라인은 근대 건축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설이라는 의의를 가지며 2001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됐다. 그 결과 매해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을 만큼 독일에서 성공한 도시재생 사례로 꼽히고 있다.
문화의 향기를 뿜어내는 굴뚝
졸페라인은 1928년 만들어진 58m 높이의 거대한 수직갱 ‘샤프트12’를 중심으로 85개의 건물이 흩어져 있다. 이들 공간은 기존 형태와 외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여전히 녹슨 철 기둥과 붉은 벽돌로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으며 박물관, 극장, 디자인 스쿨 등의 문화예술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크고 작은 디자인 회사들도 입주해 있다. 외관과 골조가 채탄 시절 그대로인 샤프트12는 이곳 지역의 역사와 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루르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석탄을 나르던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루르 지역에서 발견된 화석과 갖가지 석탄이 전시되고, 지역인들의 생활 변천사를 엿보게 하는 의류와 사진, 각종 문서가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심지어 진폐증에 걸려 숨진 한 광부의 폐까지 포르말린에 담아 보관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열기를 내뿜던 보일러 하우스는 영국의 유명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손길을 거쳐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식기와 욕실 도구부터 자동차까지 각종 제품을 전시한 이 박물관은 한해 12만 명이 방문하는 디자인의 성지가 됐다. 현재 졸페라인은 석탄을 보관하던 거대한 저장고 등 여러 건물에서 수시로 공연이 펼쳐지며, 미술 전시 등 문화를 접목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