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ist와 함께하는 여행 Writer 조성호 플로리스트 Photo 정준택

바다 옆에 핀 꽃들,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태안은 처음이었다. 꽃과 바다를 좋아하는 나에게 태안의 첫 인상은 “왜 여기를 한 번도 여행하지 않았을까? ”였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지만 여행객에게는 자연을 누리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그래서 도시로 돌아온 후에도 태안의 잔상들을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두고 싶었다.

형형색색의 튤립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다
태안여행을 의뢰받고 가장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은 튤립축제가 열리는 안면도 꽃지해변이었다. 꽃으로 밥벌이를 하다 보니 어디를 가든 꽃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주로 실내에서 꽃과 함께하기 때문에 가끔은 밖으로 나와 가만히 꽃만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튤립축제는 나에게 행복한 소식이었고 일부러 튤립축제 기간에 맞춰 여행을 떠나기로 다짐했다.
이번 여행에 별 다른 계획은 없었다. 지도를 펼쳐들고 안면도 튤립축제를 시작으로 위로 올라가며 태안 곳곳을 둘러보자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태안으로 향했다. 그래서 도착한 안면도 꽃지해변. ‘꽃지해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4월의 안면도는 튤립들로 가득했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사람들로 붐볐다. “괜히 안면도가 충남 최고의 관광명소인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튤립을 따라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튤립 천지였다. 형형색색의 튤립들이 파도를 치듯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서울에서 느낄 수 없었던 광활한 곳에서 만난 튤립. ‘사랑의 고백’이라는 꽃말처럼 연인이 함께 이곳에 온다면 분명 사랑이 배가 되어 돌아가지 않을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갑자기 찾아온 꽃샘 추위로 2~3일만 일찍 여행 계획을 세웠다면 이 아름다운 튤립 잔치를 감상할 수 없었단다. 천만 다행이다. 이래서 여행지에서의 감동은 날씨가 많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곳
안면도에서 튤립축제만 보고 태안군으로 올라갈 순 없었다. 그래도 이곳까지 왔는데 그 유명하다는 할미 할아비 바위는 보고가야 하지 않을까? 일몰 장소로 유명한 곳이지만 낮에 만나는 할미 할아비 바위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애틋한 사랑 이야기의 전설이 있는 할미 할아비 바위. 그래서일까. 형형색색의 화려한 튤립축제장과는 사뭇 다른 잔잔함이 감동으로 밀려왔다. 아무래도 사연이 있는 곳이다 보니 더욱 그러했겠지. 할미 할아비 바위를 바라보며 해안을 걷다 보니 한 연인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이 바다의 사연과 어울리는 모습 같았다. 낮에 보아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일몰의 순간은 얼마나 더 감동적일까? 하지만 일몰까지 기다리기에는 태안을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다음 여행지를 검색했다.

아는 사람만 가는 명소, 그래서 더 특별했던
안면도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명소라면 이번에는 좀 덜 알려진 곳을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천리포수목원이다. 천리포수목원에서는 한창 목련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목련은 그 꽃모양도 고급지게 예쁘지만 향도 그윽하니 좋다. 그런 목련을 만날 생각을 하니 수목원에 들어서기 전부터 설렜다. 천리포수목원은 친절했다. 다양한 종류의 목련나무에 대한 설명 팻말이 준비되어 있어 목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오면 교육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좋을 것 같다.
한동안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만 바라봐야 했던 도시에서와 달리 천리포수목원을 찾은 날은 하늘이 참 맑았다. 맑은 날씨 가운데 자연 속에 푹 담겨 있으니 잠시 속세에서 벗어나 풍류를 즐기는 한량 선비가 된 것 같았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관리된 느낌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거제도 외도 보타니아를 닮아있었다. 그리고 사계절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흙을 뚫고 나오는 새싹, 빵 터질 것 같은 꽃봉오리, 만개해서 지기 시작한 꽃…. 이렇게 조금씩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꽃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천리포수목원은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할 수 있는 데크로 된 길이 있다. 이 길을 걷다보면 맞은편의 작은 무인도 낭새섬이 눈에 들어온다. 걷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낭새섬을 바라보니 도시에서 겪었던 골치 아픈 일과 잡념을 떨쳐낼 수 있었다. 사람은 자연과 가까이할수록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다던데 수목원의 기운이 나를 치유하는 것만 같았다.

고즈넉함 속에서 해가 저물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천리포수목원을 둘러보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서해에 오면 태양이 지는 모습을 봐야 하는데…. 황급히 일몰 포인트를 찾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일몰 포인트는 안면도 꽃지해변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곳을 찾아보자는 마음에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를 지나 구름포해변으로 향했다. 일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했다.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 위치한 구름포해변은 깨끗하고 고즈넉함마저 느껴지는 곳이었다. 특히 태안기름유출사건 당시 이 지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하는데,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평온해 보였다. 다행히 구름포해변에서 멋진 일몰의 장관을 카메라 속에 담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오늘도 하루 마무리를 잘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내일은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태안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

청청해변에서의 바다낚시, 이 맛에 또 오리라
둘째 날은 오랜만에 바다낚시를 즐겨보기로 했다. 낚시는 나의 오래된 취미이다. 중학교시절 친구와 함께 매주 한강에서 낚시를 할 정도로 좋아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제대로 된 낚시를 해보겠다며 한국배스낚시연맹에서 선수로 활동했었고, ‘올해의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지금은 시간이 날 때마다 낚싯대와 미끼 한통만 가지고 동해로 낚시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래서 서해에서의 낚시는 좀 낯설다.
태안에서의 낚시 포인트는 천리포항으로 정했다. 전날 천리포수목원에서 바라본 천리포항이 조용하면서도 깔끔해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동해 못지않은 맑고 파란 바닷빛이 마음에 쏙 들었다. 천리포항은 낚시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다른 항과 비교해 낚시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서해하면 갯벌을 생각하겠지만, 천리포항 같은 항이나 포구 주변은 어느 정도 수심이 확보되어 있어 낚시하기에 좋다.
천리포항은 너무 깨끗했고, 곳곳에 쌓여있는 꽃게 통발이 이색적이었다. 방파제에 서서 물고기가 잡히길 바라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이곳이야 말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장소,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조용히 방파제 옆의 바위 틈새를 공략해 아기 우럭 한 마리를 잡았다. “태안의 손맛을 보게 해준 이 고마운 녀석! 오늘 너 역시 행운을 잡았다!” 아직 어린 우럭을 바로 바다에 놔줬다. 이것이야 말로 프로 낚시꾼의 자세이지!
이번 태안여행은 특별했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서울에서 불과 2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인데 그동안 왜 태안여행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태안에서 만난 자연의 아름다움, 그 장면 하나 하나를 기억 속에 오래 오래 남겨두고 싶어졌다.

[스페셜리스트 소개]
현재 ‘花芳(화방)플라워’를 운영 중인 조성호 플로리스트는 1999년 플로리스트에 입문해 웨딩매거진 화보촬영의 부케 작업을 해왔으며, 크고 작은 기업의 다양한 플라워 작업 및 정원 관리를 함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