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 네이쳐
Writer·photo 김용규
여우숲 숲학교 교장
숲을 마주하는 특별한 눈뜨기
이 글은 숲을 통한 치유를 주제로 연재할 첫 번째 글이다. 나는 10년 넘게 숲을 무대로 글 쓰고 강의하고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숲은 내게 용기를, 가르침과 깨달음을, 세상과 나눌 무수한 지혜를 전해주는 깊고 그윽한 원전(原典)이다. 고백건대 나는 숲을 통해 삶에서 맞닥뜨리는 무수한 신의 숙제를 풀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그렇게 우리 삶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핵심적인 문제에 초점을 둘 예정이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필연적으로 고통과 마주한다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핵심 문제 중 하나는 고통이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필연적으로 고통과 마주한다.’ 고통이 없는 이가 있다면 어디 손들어 보시라! 일체개고(一切皆苦)라 일갈했던 붓다의 깨달음을 구태여 빌리지 않더라도 고통은 너무도 명백한 보편이다. 중요한 것은 아픔에 갇힌 사람은 오직 나만 아프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그것이 우리를 외롭게 하고 못 견디게 한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나만, 내 가족만 아픈 것이 아니다. 나아가 인간만 아픈 것도 아니다. 살아있는 존재는 다 고통과 함께한다. 우리가 자주 치유를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도 아플 수 있음을 알아채는 눈. 치유의 첫 단추는 이 인식의 눈이 열릴 때 비로소 꿰어진다. 이 눈은 깊은 눈이다. 분리와 단절에 갇힌 좁고 얕은 눈이 아니다. 타자를 향해 자신을 개방하고 연결을 회복할 때만 열리는 눈이다. 마침내 스스로를 가둔 장벽을 허물고 온전한 삶의 대열에 참여하는 눈이다. 요컨대 나는 지금 숲이 전하는 첫 치유 메시지로 일상과 타자에 깊고 그윽한 눈을 뜨자고 제안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얕고 분리·단절된 눈을 가졌는지 바로 실험해 보자. 펜을 들어 오른쪽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말을 써보라! 더 읽는 걸 멈추고 얼른 써보라! 이해를 돕기 위해 바로 아래에 보통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단어를 조금 써두었다. 나머지 빈 칸은 당신이 직접 채워보자.
어떤가? 맨 아래쪽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떠올린 사람이 있는가? 그는 분명 깊은 삶이리라!
출근하는 직장과 일을 통해 하루하루 설렐 수 있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좋을까?
밥에서 감사와 평화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졌는가? 풍성한 삶이리라! 봄을 알리고 그 이른 봄에 만날 수 있는 먹거리로써의 냉이만이 아니라, 이미 가을날에 싹을 틔워 상강(霜降)의 서릿발과 북풍한설의 시간을 견뎌내고 이른 봄에 꽃피는 풀꽃이요, 생명이라는 사연을 냉이에게서 마주할 눈이 있는가? 내게는 어느 날 문득 그러한 눈이 열려 냉이가 늘 눈물겹다. 타자의 설움에서 내 설움을 보고, 내 아픈 만큼 그 존재도 아픔 안고 살고 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한결 삶이 깊어지고 맛있어졌다. 한편 SEX가 서로가 서로를 사랑스레 연주하는 악기이자 노래요, 위로이자 치유임을 얼마나 자주 느끼고 있는가? 그런 이라면 그이의 사랑은 참으로 충만하리라.
신(神)에 대하여는 어떤가? ‘있다/없다’의 분별과 논쟁을 넘고, 현재 이 땅에 서가 아닌 훗날 저기 가보지 못한 세상에서의 구원과 영생만을 염원하는 수준마저 넘은, 지금 여기 풀 한 포기에서, 당장 내게 찾아온 다양한 형상의 손님에게서 마침내 신을 마주하고 느낄 수 있는 눈을 가졌는가? 아직 종교가 없으나 나는 자주 그렇게 신을 느끼고 있음을 감히 고백한다. 그때 스며오는 영적 희열은 말과 글로 담기 어려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깊은 눈의 개안(開眼)에서 온다. 표층을 얄팍하게 인식하는 눈을 더 깊게 떠서 저 깊은 심층과 마주해 보자. 자연스레 상실감이 회복되며 도처에서 삶의 새로운 기쁨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냉이는 왜 봄이 아닌 가을에 싹을 틔워 서릿발과 북풍한설을 견디는 것일까? 따뜻한 봄에 싹을 틔우면 고통이 덜할 텐데 말이다. 그 긴 배경과 사연은 무엇일까? 그저 단면으로 타자를 대하는 눈을 가진 사람, 그 단면을 유·무용 또는 유·불리, 혹은 호·불호, 시비(是非) 등의 잣대로 재단하여 편 가르며 사는 사람에게 냉이의 그 사연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연재를 기다리시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단면 너머에 있는 긴 배경과 사연을 읽어 지치고 다친 우리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분투할 예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