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테라피 Writer 김준기
마음과 마음 신경정신과 원장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안전지대와 지지자로서의 가족
영화 원더 2017

안 좋은 일은 늘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만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참, 세상 속 편하게 사는 것 같아. 어쩜 그렇게 근심 걱정과는 완전 담 쌓은 얼굴이냐”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금방 발끈하여 “야, 나도 나름 힘든 삶을 살아왔거든”이라고 소리치고 싶을 것이다. 옛말에 현세에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곧 고행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삶은 마냥 편안한 산책길일 수 없다.

“당신 주변의 모든 이들은 저마다 당신이 전혀 모르는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해 주세요.”

영화 <원더>에 나오는 초등학교 5학년인 주인공이 하는 말이다. 꼬맹이가 뭘 안다고 저런 건방진 소릴 하나 싶겠지만, 이 오거스트 폴먼이라는 어린 친구의 짧은 인생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치열한 전쟁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선천성 안면기형이라는 희귀 질환을 갖고 태어나, 겨우 10살이 될 때까지 무려 27번이나 성형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주사 맞고, 마취하고, 칼로 째고, 핀을 박고, 바늘로 꿰매고(그것도 주로 얼굴에만 집중적으로) 하는 수술을 27번이나 했으니, 유아기에 그가 겪었을 신체적 고통은 어떤 말로도 쉽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거스트의 전쟁이 여기서 끝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얼굴에 그토록 많이 손을 댔으니 그의 얼굴이 남들과 비슷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주변의 또래들로부터 기피 대상, 혐오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괴물, 변종, 구토유발자, 골룸, 오크족 정도의 별명은 늘 훈장처럼 갖고 살아야만 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어거스트는 집에서 혼자 지내거나, 밖을 다닐 때에는 우주 비행사 헬멧을 쓰고 다녀야만 했다. 영화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홈스쿨링을 하던 어거스트가 5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학교에 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결코 쉽지 않은 전쟁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혼자라고 느껴져도 넌 혼자가 아니야!”
어거스트가 처음 학교에 가는 날, 그러니까 잔뜩 긴장해 전쟁터로 떠나가는 날, 연약한 아들을 험난한 전쟁터로 보내는 어거스트의 엄마, 아빠가 보여주는 모습, 그 부모로서의 따스하면서도 든든한 태도가 내게는 영화 속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어거스트가 처음 간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엄마, 아빠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어거스트를 보고 놀라고 무서워하고 놀릴 것이라는 것도 어른인 엄마, 아빠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고립되지 않고 사람과 어울려 살려면 어거스트가 이 전쟁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엄마, 아빠는 간절한 심정으로 기도하며 어거스트를 학교로 보낸다. 막상 교문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아들에게 엄마, 아빠는 따뜻한 말로 안심시켜준다. “사랑해. 이따가 보자!” “혼자라고 느껴져도 넌 혼자가 아니야!” 이건 분명히 두려워하는 어린 아들의 몸과 마음을 안심시켜주며 다독여주는 말이자 감정이다.

“별 거 아니야. 두려워할 필요 없어. 넌 잘 할 수 있어.”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런 표현을 왜 우리는 실제 상황에서 쉽게 할 수 없는 걸까? 우리는 대개 격려의 말을 해주려는 경향이 있다.
“별 거 아니야. 두려워할 필요 없어. 넌 잘 할 수 있어.” 우리가 흔히 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이도 힘내라고 해주는 응원과 격려의 말이기는 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식의 표현은 대개 아이의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인간의 뇌)을 일깨우는 교훈의 말로, 아이의 불안 반응이 폭발하듯이 일어나고 있는 변연계(limbic system, 포유류의 뇌)와 뇌간(brain stem, 파충류의 뇌)을 토닥여주는 효과는 전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이러한 응원과 격려의 말은 오히려 아이의 불안을 살짝 외면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몸은 별 것이 아니지 않은 것 같은데 별 거 아니라고 하는 말을 들어야 하고, 몸은 두려워하고 있는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면, 과연 듣는 사람의 몸이 편안해질 수가 있을까? “이런 것 하나 못하면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래. 차라리 다 때려치워. 그럴 거면 하지 마.” 이런 명백한 비난의 말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다. 힘든데 외면당하는 것도 아이에게는 상처가 된다. 피할 곳이 없는 느낌, 그냥 내쳐진 느낌을 받게 되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대개 아이는 자책을 하게 된다. 불안해하는 몸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top-down regulation의 부작용이다. 생각을 바꾸면 감정과 신체반응이 바뀐다고 하는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topdown regulation은 이젠 정신의학계에서 한물 간 이론일 뿐이다. 최근 신경생리학이 밝혀낸 진실 중 하나는 우리 인간은 먼저 몸이 편안해져야 감정이 차분해지고, 그래야 비로소 생각이 이성적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부학적 위치상으로 맨 아래쪽에 있는 파충류의 뇌(뇌간)와 중간에 놓여있는 포유류의 뇌(변연계)가 먼저 안정을 찾아야, 가장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뇌(전전두엽)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를 bottom-up regulation이라고 한다.

“부드럽게 아이를 만져주고 안아주세요.”
부모, 어른, 학교는 불안해하는 아이, 두려움에 위축된 아이에게 실질적인 편안함과 안전감을 제공할 수 있는 안전지대 역할을 잘 해야 한다. 쉽게 말로만 괜찮다고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옆에 함께 있어주면서 같은 편이 되어주고,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많이 손으로, 얼굴 표정으로, 눈빛으로, 목소리 톤으로 부드럽게 아이를 만져주고(touching) 안아주어야(holding) 한다. 그래야 불안 반응으로 흥분되어 있는 아이의 뇌간과 변연계가 안정을 찾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영화 속 어거스트는 든든한 안전지대와 지지자가 꽤나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집, 가족(엄마, 아빠, 누나), 헬멧(얼굴을 가려주니까), 우주여행(어거스트가 자주 상상속에서 떠나가는 여행), 애완견, 학교 친구들, 학교 선생님들, 누나 친구들 등등. 영화니까 그렇지 현실에서야 어디 그럴 수 있겠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영화는 세상과 가장 힘든 전쟁을 치르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주변의 가족과 선생님들이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지지자가 있나요?”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내담자가 상담실을 찾아왔을 때, 초반에 물어보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가 있다. 잠시 지금 그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고, 혹시 마음속에 편안하게 느껴지는 안전지대를 떠올릴 수 있는지 물어본다. 혹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지지자가 있는지도 물어본다. 만약 안전지대나 지지자를 상상으로라도 잘 떠올릴 수 있다면, 그 내담자의 뇌 신경회로에는 강력한 긍정적 회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는 아무리 심한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하더라도 그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긍정적 에너지원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에 이후의 치유의 과정이 순조롭게 일어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만약 안전지대나 지지자가 처음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먼저 마음속으로라도 그러한 긍정자원의 씨앗을 찾아내고 키워나가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이 필요 없는 아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어거스트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상처들도 객관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모범생으로 조용히 학교생활 잘 하는 누나 비아의 숨겨진 상처는 집안에 큰 병치레를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로 인해 당연히 받아야 할 관심과 사랑을 양보해야 하는 아이들의 상처를 잘 대변하고 있다.
“어기는 태양.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이다. 난 엄마에게 숙제 한 번 도와달라고 한 적 없고, 아버지 잔소리 한 마디 듣지 않고 혼자서 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야만 했다. 엄마가 날 한 번이라도 봐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PS. 비아의 이 절절한 속마음을 들어보면, 아무 표현하지 않는다고 엄마, 아빠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 없는 아이는 절대로!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