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을 이야기하다 Writer 고정희 Photo 정준택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소설 <태안> 이진이 작가

태안 바다는 태안 사람들에게 삶이자 터전이고, 희망이다. 태안 사람들은 그런 바다를 잃은 경험을 했다. 2007년 겨울, 태안기름유출사고로 절망을 몸소 느꼈고, 다시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실은 왜곡되었다. 양우석 영화감독과 이진이 작가는 아직 끝나지 않은 태안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들은 소설 <태안-기적의 바다>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다양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이 사건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고, 마음이 아팠다.

"바다는 태안 사람들에게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망망대해 푸른 바다에 기대 밥을 먹고 자식을 키우고 살림을 꾸려왔다. 그래서 쉼 없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육지로 향하는 바다가 늘 고맙다. 그 바다가 지금 숨도 쉬지 못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해안가로 달려오는 고통에 울부짖는 것 같았고, 검은빛 파도는 아픈 바다가 피를 토하는 것 같았다. 아파서 용트림 하는 바다에 태안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찢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것이 사람들을 더욱 절망케 했다." 소설 <태안> 중에

2007년 겨울, 대한민국은 태안에 집중했다. 태안기름유출사고로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태안에 가서 기름제거 작업을 했고, 함께 고생을 감내하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었다. 태안기름유출사고는 만리포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이 충돌해 총 1만 2547㎘의 원유가 태안해역에 유출된 사건으로, 역대 가장 큰 피해를 끼친 국내 해상 기름유출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전국에서 123만 자원봉사자가 태안군을 방문해 11개월간 총 4,175㎘의 폐유와 3만2,074톤의 흡착폐기물을 수거하는 등 전 국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피해 복구가 이뤄졌다. 그리고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고 태안은 다시 서해안을 대표하는 휴양관광도시의 모습을 회복해 가고 있다.

기억하지 않으면 잊힐 이야기
<태안-기적의 바다>는 태안기름유출사고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영화 <변호인>의 양우석 감독이 기획하고 대구MBC에서 라디오와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진이 작가가 집필했다. 양우석 감독은 태안의 바다와 사람들을 다시 빛나게 한 123만 자원봉사자들의 기적, 그리고 이면의 고통과 비극을 여러 사람과 함께 기억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했고, 확산성이 높은 소설로 담아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이진이 작가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는 역사답사 관련 글을 쓰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양우석 감 독이 태안기름유출사고를 소재로 한 책을 펴내보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한번쯤은 장편소설을 써보고 싶었던 터라 나름 도전이고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승낙했죠. 이 소설을 준비하면서 기획과 취재에만 3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직접 태안에 내려가 주민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건 이후의 주민들이 받은 고통을 좀 더 상세하게 알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현재 우리의 기억에 ‘태안기름유출사고’라고 하면 사고의 원인이 되었던 ‘삼성중공업’이나 ‘허베이스프리트호’는 사라지고 오로지 ‘태안’과 ‘자원봉사자’만 남아있다. 즉 가해자는 빠지고 피해자만 각인되는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 소설을 기획했을 당시에는 가해자에 포커스를 맞춰 소설을 끌고가려고도 했다. 하지만 이진이 작가는 태안 주민이 겪은 상황과 고통을 들으면서 ‘태안’을 이야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소설 초반에는 태안의 아름다운 바다와 물기 섞인 바람, 입안에 침이 고이는 먹거리들, 그리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태안 사람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야지만 독자들이 바다에 기름이 유출되었을 때 태안 주민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깐요.”

정말 그랬다. 소설을 읽으면서 태안 사람들에게 풍요를 가져다 주었던 바다가 검은빛으로 변했을 때의 리얼한 상황이 전개되자 태안 주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울컥했다.

저마다 다르게 기억하다
이진이 작가는 “<태안>은 소설이지만, 소설보다는 백서에 가깝다”라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기획 초기부터 자료로서의 역할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듯 하다. 하지만 내용 전개에 있어 흥미진진함만을 놓고 볼 때 개인적으로 어느 소설 못지 않게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느꼈다. 특히 주인공 한민수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모두 실제 만난 태안 주민들을 모델로 했어요. 주인공 한민수는 소설에서는 여자지만, 실제 모델은 남자예요.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 공통적으로 언급했던 공무원이 있었는데, 이름만 들었을 때는 여자 같았거든요. 그런데 실제 만나보니 남자더라고요. 한민수처럼 없는 일도 만들어내는 아주 당찬 인물이었죠. 소설에서도 언급했지만, 실제로 고려청자 발굴사업을 앞장서서 진행했던 인물이기도 해요. 그래서 주인공을 ‘한민수’라는 남자 이름의 여자 공무원으로 바꿔 소설을 이끌어간다면 더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을 집필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저마다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정리해 담아내는 과정이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태안에서 함께 살고, 함께 경험한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모두 다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사건을 기억하고 해석하는 거죠. 각자가 받는 상처의 크기나 트라우마의 크기,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태안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것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이진이 작가는 이 어려운 숙제를 잘 풀어냈다. 적어도 소설에서만큼은 광범위하게 다양한 각도에서 태안기름유출사고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안기름유출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소설 <태안>은 참고하기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누군가의 삶이자 터전
태안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하고 10년이 지났지만 태안 주민의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관광지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아직 이 사고의 그림자가 남아있다. 여전히 바닷속에는 타르가 남아있고 기름성분이 묻은 바다 밑 바위에는 미역이나 다시마가 붙지 않아 전복이나 해삼 양식이 잘 되지 않는다. 생태계는 회복되고 있지만, 그 후유증으로 인한 주민들의 힘들어진 삶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태안 주민들을 취재하면서 진짜 열심히 사신다고 느꼈어요. 사람이 극한 상황에 오면 오히려 정신이 투명해지고 선택의 폭이 좁아지잖아요. 태안 주민들도 태안기름유출사고 전에는 바다에서 물질하는 평범한 삶을 살았었는데, 막상 사고가 터지고 터전이 파괴되니까 선택이 분명해졌었어요. ‘지금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일, 기름을 걷어내자!’라고 판단했고 이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발단이 되었죠. 이것이야 말로 인간의 무서운 에너지고 삶의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이진이 작가는 태안을 여행할 때 아름다운 면만 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태안은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에요. 만약 태안을 여행하신다면 이 아름다운 면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곳이 누군가에게 삶의 터전이 되었을 때 어떤 공간일지, 어떤 의미일지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꼭 태안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특히 태안기름유출사고에 대해 접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사건을 크게 보지 말고 피해 당사자들이 무엇을 느꼈을지 한 번쯤 생각해본다면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태안>은 적어도 태안을 제대로 바라 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새로 출발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평범한 사람들의 기적같은 이야기를 담은 소설 <태안>을 통해 많은 이들이 함께 ‘태안’의 기억을 나누고 의미를 되새기기를 바라본다.

"우리가 많은 걸 바라나? 그냥 태안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정도면 됐어. 그저 새로 출발할 수 있게 사고 이전으로 원상복구 되는 거, 그게 소원이야." 소설 <태안> 중에